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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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머물러라(요한 15,4) (남산본당 100주년 기념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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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본당 100주년 기념미사
2026. 05. 30.
남산본당 설립 100주년을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남산본당의 주보이신 요셉 성인께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본당 발전과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주님의 강복이 있기를 빕니다.
남산본당은 1926년 5월 30일부로 ‘남산성요셉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로 꼭 100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교구로서는 네 번째이고 대구 시내로서는 두 번째 본당입니다. 1885년에 파리외방전교회의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이 칠곡 신나무골에 정착함으로써 경상도 첫 본당이 탄생하였는데, 지금의 계산본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95년에 칠곡 가실본당이 설립되었고, 1901년에 김천본당(황금)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26년 5월 30일에 두 본당이 설립되었는데, 이곳 남산본당과 경주본당(성동)입니다. 그래서 내일에는 제가 경주에 가서 경주 성동본당 100주년 미사를 드릴 예정입니다. 남산성요셉본당은 대구본당(계산)으로부터 분할되어 설립되었는데, 건물이 없어 교구청 안에 있던 명도회관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남대영 델랑드 신부님이 오셔서 이 건너편 대명동 땅을 매입하였고, 그 다음 바이예 신부님이 1936년 그곳에 2층짜리 벽돌 성당을 지었는데, 이때부터 ‘대명동성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의 송림맨션 자리입니다. 그 당시에는 남산성당 앞의 길 건너편이 다 대명동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명동이 엄청 넓지요. 지금의 대명성당, 대덕성당, 소화성당, 성토마스성당이 다 대명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52년에 교구가 효성여자대학을 인가받아 시작하려니까 당장 캠퍼스가 없어서 그 성당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다시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바로 뒤에 성당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53년 5월 5일에 최덕홍 요한 주교님께서 이 성당을 ‘남산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명동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있던 그 자리는 효성여자대학이 되었다가 효성여대가 봉덕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효성여자중학교가 들어서게 되었고, 그 효성여중이 1990년에 월성동으로 이전하면서 송림맨션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여곡절과 스토리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산본당 출신 성직자가 현재 39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구에서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회 소속 부제님이 한 분 계시는데 올 7월에 사제품을 받을 예정이니까 곧 40명이 된다고 합니다. 출신 성직자 명단을 찾아보니까 훌륭하신 인물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1번이 1938년에 서품되신 장병화 요셉 주교님이신데, 마산교구 2대 교구장이셨습니다. 2번 김경우 알렉시오 신부님은 이북 출신으로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될 때 부산교구로 이적하셨는데, 제가 1972년에 대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장님이셨습니다. 3번 김동한 가롤로 신부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형님으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저희 화원본당 신부님이셨고, 나중에 송현동에 있던 결핵요양원 원장을 하시며 우리 교구 사회복지후원회인 밀알회를 창설하셨습니다. 4번은 누구신지 잘 아시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십니다. 남산본당 출신으로 1951년 9월 15일에 계산성당에서 최덕홍 주교님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으셨고, 15년 동안 우리 교구 사제로 사시다가 1966년에 마산교구가 설립되면서 초대 마산교구 주교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로 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9년 2월 16일에 선종하셨는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서울대교구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기로 하였고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추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셨습니다. 그래서 올 8월에 서울대교구에서 총대리 주교님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이 우리 교구에 있는 김 추기경님의 여러 흔적들에 대한 현장 검증을 하러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루빨리 시복되고 시성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어지신 삶을 우리가 본받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5,1-10)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시고 포도나무를 예로 드시면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4-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들으시면서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성당 나오는 것이 시들해지고 그래서 냉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고 세상을 밝게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감정적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기도와 말씀과 성체라고 생각됩니다. 기도와 말씀과 성체를 가까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행복과 참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2026. 05. 30.
남산본당 설립 100주년을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남산본당의 주보이신 요셉 성인께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본당 발전과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주님의 강복이 있기를 빕니다.
남산본당은 1926년 5월 30일부로 ‘남산성요셉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로 꼭 100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교구로서는 네 번째이고 대구 시내로서는 두 번째 본당입니다. 1885년에 파리외방전교회의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이 칠곡 신나무골에 정착함으로써 경상도 첫 본당이 탄생하였는데, 지금의 계산본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95년에 칠곡 가실본당이 설립되었고, 1901년에 김천본당(황금)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26년 5월 30일에 두 본당이 설립되었는데, 이곳 남산본당과 경주본당(성동)입니다. 그래서 내일에는 제가 경주에 가서 경주 성동본당 100주년 미사를 드릴 예정입니다. 남산성요셉본당은 대구본당(계산)으로부터 분할되어 설립되었는데, 건물이 없어 교구청 안에 있던 명도회관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남대영 델랑드 신부님이 오셔서 이 건너편 대명동 땅을 매입하였고, 그 다음 바이예 신부님이 1936년 그곳에 2층짜리 벽돌 성당을 지었는데, 이때부터 ‘대명동성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의 송림맨션 자리입니다. 그 당시에는 남산성당 앞의 길 건너편이 다 대명동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명동이 엄청 넓지요. 지금의 대명성당, 대덕성당, 소화성당, 성토마스성당이 다 대명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52년에 교구가 효성여자대학을 인가받아 시작하려니까 당장 캠퍼스가 없어서 그 성당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다시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바로 뒤에 성당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53년 5월 5일에 최덕홍 요한 주교님께서 이 성당을 ‘남산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명동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있던 그 자리는 효성여자대학이 되었다가 효성여대가 봉덕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효성여자중학교가 들어서게 되었고, 그 효성여중이 1990년에 월성동으로 이전하면서 송림맨션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여곡절과 스토리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산본당 출신 성직자가 현재 39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구에서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회 소속 부제님이 한 분 계시는데 올 7월에 사제품을 받을 예정이니까 곧 40명이 된다고 합니다. 출신 성직자 명단을 찾아보니까 훌륭하신 인물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1번이 1938년에 서품되신 장병화 요셉 주교님이신데, 마산교구 2대 교구장이셨습니다. 2번 김경우 알렉시오 신부님은 이북 출신으로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될 때 부산교구로 이적하셨는데, 제가 1972년에 대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장님이셨습니다. 3번 김동한 가롤로 신부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형님으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저희 화원본당 신부님이셨고, 나중에 송현동에 있던 결핵요양원 원장을 하시며 우리 교구 사회복지후원회인 밀알회를 창설하셨습니다. 4번은 누구신지 잘 아시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십니다. 남산본당 출신으로 1951년 9월 15일에 계산성당에서 최덕홍 주교님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으셨고, 15년 동안 우리 교구 사제로 사시다가 1966년에 마산교구가 설립되면서 초대 마산교구 주교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로 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9년 2월 16일에 선종하셨는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서울대교구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기로 하였고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추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셨습니다. 그래서 올 8월에 서울대교구에서 총대리 주교님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이 우리 교구에 있는 김 추기경님의 여러 흔적들에 대한 현장 검증을 하러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루빨리 시복되고 시성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어지신 삶을 우리가 본받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5,1-10)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시고 포도나무를 예로 드시면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4-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들으시면서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성당 나오는 것이 시들해지고 그래서 냉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고 세상을 밝게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감정적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기도와 말씀과 성체라고 생각됩니다. 기도와 말씀과 성체를 가까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행복과 참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