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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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고 사랑하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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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
2026. 06. 25. 성모당
오늘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은 남북 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과 분열이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 분단이 하나의 원죄인 셈입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 가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나라의 외교권이 빼앗겼고, 1910년에 나라 전체가 일본에 합병된 일이 더 큰 원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북위 38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잘랐으며, 북에는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군정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몇몇 사람들이 한반도에 단일 정부, 단일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섰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결국 1948년 8월 15일에 남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북에는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던 것입니다.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 후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유엔 한국위원회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군대를 주둔하다가 철수한다고 하는데 내전이 일어나면 당신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런데 미군 군정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한 것도 큰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남한 정부가 북한과 북한군의 움직임에 대한 첩보가 계속 올라왔으나 이에 대해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수백 대의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한국군 병력의 절반이 외출이나 외박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군이 남침한 지 불과 3일 만인 6월 28일에 한국 정부는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주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7월 7일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창설되어 본부를 일본 도쿄에 두고 첫 번째로 미군 스미스 부대를 한국전에 파병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북한군은 남침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다부동 전투가 그렇고 영천 전투가 그랬습니다. 제 고향이 달성군 옥포입니다. 낙동강을 넘으면 바로 우리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우리 가족도 대구에 있는 아버지의 외갓집으로 피난을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이 시내에 나갔다가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징집되어 어떤 부대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녀를 다섯이나 둔 가장을 국가가 전장에 투입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 어머님은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아버님을 찾아서 여러 부대를 다녔지만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갓난아기가 제 바로 위의 형인데 1950년 5월 5일생입니다. 형이 태어난 지 한 달 20일 만에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그 어린애가 대구로 피난 와서, 그것도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 제대로 먹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형제 팔남매 중에서 몸집이 가장 작습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군대에 끌려가신 아버님께서는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후퇴하였습니다. 그 후퇴하는 과정에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이도 많고 하여 군에서 제대 조치를 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1952년에 태어났고, 제 뒤로 동생 둘이 더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 후에 아버님이 형을 호적에 올리면서 1952년생으로 올렸고, 저를 1954년생으로 올렸습니다. 2년이나 늦게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묻지 못하고 어머니께 ‘왜 그러셨대요?’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답이, ‘전쟁터에 나가보니까 갓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들이 많이 왔는데, 요령이 없어서 총에 잘 맞고 잘 죽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에 늦게 가라고 2년씩 늦게 올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호적에는 제가 54년생으로 되어있지만, 제 출신 본당인 화원본당 세례대장에는 52년생으로 되어있습니다. 6.25 한국전쟁 이야기하다가 우리 집안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만, 다시는 이런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짓이 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을 벌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은 얼마나 심하고 오래 가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미국과 이란이 큰 틀에서 휴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부 사항에 대하여 협상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엄청난 재산 손실과 환경 파괴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전쟁을 했어야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 6.25 전쟁으로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다가 휴전을 한 지 올해로 73년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노무현 대통령 때,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때 남북 정상 회담을 가진 바가 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이 더 닫혀있습니다. 남과 북의 모든 통신과 소통의 길이 단절되었습니다.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있던 다리마저 끊고 있고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더 큰 장벽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에 북한의 ‘내 고향 여자 축구단’이 우리나라에 와서 ‘수원 FC 위민 축구팀’과 경기를 했습니다. 북한 여자 팀이 이겼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나라 어느 기자가 북한 감독한테 질문하였는데, 그 질문 한 마디에 북한 감독이 일어나 자리를 떠버렸습니다. 그것은 질문하는 기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북한’이라 불렀다고 기분 상했다며 일어나 가버린 것입니다. 남과 북에 가로놓인 마음의 장벽도 이렇게 높고 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대로 그냥 살아야 할까요? 통일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서로 위협하지 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이혼했으면 그것으로 됐지, 왜 서로 욕하고 험담합니까? 다시 합쳐질 수 없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남과 북에 못지않게 우리 안에서도 우리끼리 서로 원수처럼 너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한 나라 안에 진보의 가치도 필요하고 또 보수의 가치도 필요한데, 서로 다르다고 욕하고 저주하는 모습이 여전합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점에 있어서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의 성경 말씀들은 한결같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봅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4,29-5,2)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26. 06. 25. 성모당
오늘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은 남북 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과 분열이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 분단이 하나의 원죄인 셈입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 가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나라의 외교권이 빼앗겼고, 1910년에 나라 전체가 일본에 합병된 일이 더 큰 원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북위 38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잘랐으며, 북에는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군정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몇몇 사람들이 한반도에 단일 정부, 단일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섰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결국 1948년 8월 15일에 남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북에는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던 것입니다.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 후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유엔 한국위원회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군대를 주둔하다가 철수한다고 하는데 내전이 일어나면 당신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런데 미군 군정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한 것도 큰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남한 정부가 북한과 북한군의 움직임에 대한 첩보가 계속 올라왔으나 이에 대해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수백 대의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한국군 병력의 절반이 외출이나 외박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군이 남침한 지 불과 3일 만인 6월 28일에 한국 정부는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주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7월 7일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창설되어 본부를 일본 도쿄에 두고 첫 번째로 미군 스미스 부대를 한국전에 파병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북한군은 남침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다부동 전투가 그렇고 영천 전투가 그랬습니다. 제 고향이 달성군 옥포입니다. 낙동강을 넘으면 바로 우리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우리 가족도 대구에 있는 아버지의 외갓집으로 피난을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이 시내에 나갔다가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징집되어 어떤 부대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녀를 다섯이나 둔 가장을 국가가 전장에 투입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 어머님은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아버님을 찾아서 여러 부대를 다녔지만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갓난아기가 제 바로 위의 형인데 1950년 5월 5일생입니다. 형이 태어난 지 한 달 20일 만에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그 어린애가 대구로 피난 와서, 그것도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 제대로 먹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형제 팔남매 중에서 몸집이 가장 작습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군대에 끌려가신 아버님께서는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후퇴하였습니다. 그 후퇴하는 과정에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이도 많고 하여 군에서 제대 조치를 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1952년에 태어났고, 제 뒤로 동생 둘이 더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 후에 아버님이 형을 호적에 올리면서 1952년생으로 올렸고, 저를 1954년생으로 올렸습니다. 2년이나 늦게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묻지 못하고 어머니께 ‘왜 그러셨대요?’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답이, ‘전쟁터에 나가보니까 갓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들이 많이 왔는데, 요령이 없어서 총에 잘 맞고 잘 죽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에 늦게 가라고 2년씩 늦게 올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호적에는 제가 54년생으로 되어있지만, 제 출신 본당인 화원본당 세례대장에는 52년생으로 되어있습니다. 6.25 한국전쟁 이야기하다가 우리 집안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만, 다시는 이런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짓이 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을 벌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은 얼마나 심하고 오래 가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미국과 이란이 큰 틀에서 휴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부 사항에 대하여 협상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엄청난 재산 손실과 환경 파괴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전쟁을 했어야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 6.25 전쟁으로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다가 휴전을 한 지 올해로 73년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노무현 대통령 때,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때 남북 정상 회담을 가진 바가 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이 더 닫혀있습니다. 남과 북의 모든 통신과 소통의 길이 단절되었습니다.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있던 다리마저 끊고 있고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더 큰 장벽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에 북한의 ‘내 고향 여자 축구단’이 우리나라에 와서 ‘수원 FC 위민 축구팀’과 경기를 했습니다. 북한 여자 팀이 이겼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나라 어느 기자가 북한 감독한테 질문하였는데, 그 질문 한 마디에 북한 감독이 일어나 자리를 떠버렸습니다. 그것은 질문하는 기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북한’이라 불렀다고 기분 상했다며 일어나 가버린 것입니다. 남과 북에 가로놓인 마음의 장벽도 이렇게 높고 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대로 그냥 살아야 할까요? 통일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서로 위협하지 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이혼했으면 그것으로 됐지, 왜 서로 욕하고 험담합니까? 다시 합쳐질 수 없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남과 북에 못지않게 우리 안에서도 우리끼리 서로 원수처럼 너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한 나라 안에 진보의 가치도 필요하고 또 보수의 가치도 필요한데, 서로 다르다고 욕하고 저주하는 모습이 여전합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점에 있어서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의 성경 말씀들은 한결같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봅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4,29-5,2)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