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교구장 말씀
사랑하면 알리라 (마리아폴리 미사 강론)
  •   2026-07-22
  •   354

마리아폴리 미사

 

2026. 07. 17.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경주 코모도호텔

 

‘마리아폴리(Mariapoli)’는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상을 나누고, 경험담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모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상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일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이상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이상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라는 이상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직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수도자가 되며, 어떤 사람은 포콜라레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콜라레 운동은 하느님이라는 이상을 이 세상에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을 이 세상에 완벽하게 실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끼아라 루빅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고 제안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례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뼛속 깊이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우리 스스로 말하기에는 분명 부족함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실천적으로 ‘또 하나의 예수님’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끼아라가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우리도 살자는 것인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끼아라가 말한 ‘새로운 양식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끼아라의 그 많은 생활 말씀을 보면, 결국 ‘사랑하자’는 말씀입니다.

오늘 오후에 권지호 신부님의 사랑에 관한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네 분의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모두 사랑에 관한 살아있는,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경주 마리아폴리 주제가 ‘사랑하면 알리라!’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유한준이라는 학자의 말을 유홍준 교수가 사용하여 유명해진 말입니다. 어떻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물만이 아니라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먼저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청주교구 감곡성당의 초대 주임인 임 가밀로 신부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김종강 시몬 대주교님께서 우리 교구 부교구장으로 오셔서 지난달 27일에 취임미사를 했는데, 답사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참 멋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2,1-8)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하고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대표적으로 ‘일’, ‘노동’입니다. 공의회 전에는 주일에 일을 하려고 하면 본당 신부님한테 관면을 받아야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도 모두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입니까?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는 추수고 타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리사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7-8)

안식일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신데, 안식일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7월 17일 제헌절(制憲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법法’이란 글자를 보면,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를 쓰는데, 법은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란 것은, 사람을 제재하고 구속하는 것이라기보다 사람과 공동체가 물처럼 순조롭게 잘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법 이전에 자비이고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사랑은 모든 법의 완성’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로도 나왔습니다만.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라는 사람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장발장을 변화시킨 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한 성직자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부산의 어느 편의점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지적 장애 1급) 두 명이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어 계산하지 않고 나눠 먹었다가 특수절도 협의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장애인들의 부모가 편의점에 10만 원을 배상했고, 편의점 주인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경찰은 두 명이 공모했다고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결국 검찰에서 기소유예가 되었습니다만, 그 장애인들의 두뇌가 3-4살 어린이의 수준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특수절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발달장애인들을 검찰에 송치한 사람들이나, 그리고 장발장을 끝까지 무자비하게 추적했던 자베르 경감이나,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법이라는 것은, 사람을 통제하고 분리하고 배제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환대하고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랑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콜라레 운동이 바로 그런 사랑의 원리로 움직이는 운동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리아폴리는 사랑과 일치의 자리입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평소에 사시는 자리가 마리아폴리가 되도록 하십시오. 마리아의 도시를 여러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건설하시길 바랍니다.

2026. 07. 17.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경주 코모도호텔

 

‘마리아폴리(Mariapoli)’는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상을 나누고, 경험담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모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상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일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이상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이상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라는 이상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직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수도자가 되며, 어떤 사람은 포콜라레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콜라레 운동은 하느님이라는 이상을 이 세상에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을 이 세상에 완벽하게 실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끼아라 루빅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고 제안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례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뼛속 깊이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우리 스스로 말하기에는 분명 부족함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실천적으로 ‘또 하나의 예수님’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끼아라가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우리도 살자는 것인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끼아라가 말한 ‘새로운 양식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끼아라의 그 많은 생활 말씀을 보면, 결국 ‘사랑하자’는 말씀입니다.

오늘 오후에 권지호 신부님의 사랑에 관한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네 분의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모두 사랑에 관한 살아있는,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경주 마리아폴리 주제가 ‘사랑하면 알리라!’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유한준이라는 학자의 말을 유홍준 교수가 사용하여 유명해진 말입니다. 어떻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물만이 아니라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먼저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청주교구 감곡성당의 초대 주임인 임 가밀로 신부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김종강 시몬 대주교님께서 우리 교구 부교구장으로 오셔서 지난달 27일에 취임미사를 했는데, 답사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참 멋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2,1-8)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하고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대표적으로 ‘일’, ‘노동’입니다. 공의회 전에는 주일에 일을 하려고 하면 본당 신부님한테 관면을 받아야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도 모두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입니까?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는 추수고 타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리사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7-8)

안식일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신데, 안식일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7월 17일 제헌절(制憲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법法’이란 글자를 보면,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를 쓰는데, 법은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란 것은, 사람을 제재하고 구속하는 것이라기보다 사람과 공동체가 물처럼 순조롭게 잘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법 이전에 자비이고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사랑은 모든 법의 완성’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로도 나왔습니다만.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라는 사람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장발장을 변화시킨 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한 성직자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부산의 어느 편의점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지적 장애 1급) 두 명이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어 계산하지 않고 나눠 먹었다가 특수절도 협의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장애인들의 부모가 편의점에 10만 원을 배상했고, 편의점 주인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경찰은 두 명이 공모했다고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결국 검찰에서 기소유예가 되었습니다만, 그 장애인들의 두뇌가 3-4살 어린이의 수준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특수절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발달장애인들을 검찰에 송치한 사람들이나, 그리고 장발장을 끝까지 무자비하게 추적했던 자베르 경감이나,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법이라는 것은, 사람을 통제하고 분리하고 배제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환대하고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랑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콜라레 운동이 바로 그런 사랑의 원리로 움직이는 운동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리아폴리는 사랑과 일치의 자리입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평소에 사시는 자리가 마리아폴리가 되도록 하십시오. 마리아의 도시를 여러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건설하시길 바랍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
621 밭에 숨겨진 보물 (한티 순교자 마을 잔치 미사 강론)
  • 번호 :  621
  • 등록일 :  2026-07-30
  • 조회 :  534
2026-07-30 534
620 밀과 가라지 (영천성당 농민주일 미사 강론)
  • 번호 :  620
  • 등록일 :  2026-07-22
  • 조회 :  490
2026-07-22 490
619 사랑하면 알리라 (마리아폴리 미사 강론)
  • 번호 :  619
  • 등록일 :  2026-07-22
  • 조회 :  355
2026-07-22 355
618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원평본당 70주년 및 견진성사 강론)
  • 번호 :  618
  • 등록일 :  2026-07-07
  • 조회 :  583
2026-07-07 583
617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한 사람 (수리치골 성지순례 미사 강론)
  • 번호 :  617
  • 등록일 :  2026-07-07
  • 조회 :  475
2026-07-07 475
616 함께 걷는 교회 (WYD십자가와 성모성화 환송미사 강론)
  • 번호 :  616
  • 등록일 :  2026-07-02
  • 조회 :  553
2026-07-02 553
615 환자중심과 이념중심 (파티마병원 개원 70주년 및 경당 축복미사 강론)
  • 번호 :  615
  • 등록일 :  2026-07-02
  • 조회 :  446
2026-07-02 446
614 용서하고 사랑하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 강론)
  • 번호 :  614
  • 등록일 :  2026-06-26
  • 조회 :  616
2026-06-26 616
613 예수 성심과 성모 자애의 사랑 (성모자애원 설립 90주년 감사미사 강론)
  • 번호 :  613
  • 등록일 :  2026-06-22
  • 조회 :  737
2026-06-22 737
612 잘 먹고 잘 자고 기쁘게 일하십시오 (팔로티회 사제서품미사 강론)
  • 번호 :  612
  • 등록일 :  2026-06-16
  • 조회 :  1023
2026-06-16 1023
611 우리 신부님을 보낼 수 없는 10가지 이유 (사제성화의 날 미사 강론)
  • 번호 :  611
  • 등록일 :  2026-06-16
  • 조회 :  904
2026-06-16 904
610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 환영 미사 강론)
  • 번호 :  610
  • 등록일 :  2026-06-08
  • 조회 :  763
2026-06-08 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