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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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 (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 감사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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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 감사미사
2026. 09. 16.
먼저 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세월 동안 우리 학교에 많은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학교 발전과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던 역대 교장 선생님들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동창회 여러분과 학부모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진그룹의 서중호 회장님께서 오셨는데, 회장님께서는 우리 대건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맡기 전부터 오랫동안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그 외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도움을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대구의 최초의 성당이 어디입니까? 계산성당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인 로베르 신부님께서 1885년에 칠곡 신나무골에 정착하면서 경상도를 사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로베르 신부님은 새방골을 거쳐 1891년에 대구 읍성으로 들어오셔서 현재의 계산성당 터를 매입하여 성당 건축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898년에 그 자리에 십자형의 한옥 성전을 지어 봉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교육시설인 ‘해성재’를 지었습니다. 그 해성재가 오늘날 효성초등학교입니다. 128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옥성당이 1901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어 1903년에 벽돌로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계산성당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이승훈 선생께서 당시 청나라에 동지사 사절로 따라갔다가 북경의 북당성당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1784년입니다. 그리고 1831년에 조선교구가 설정되었고, 1911년에 조선교구가 다시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교구는 조선교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고, 대구교구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관할하며 사목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교구의 교구청이 들어선 곳이 바로 남산동입니다.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님께서 교구의 기초를 놓기 위해 세 가지를 도와달라고 성모님께 청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학교입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라는 이름으로 1914년 10월 1일에 남산동에서 개교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교육시설을 함께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1945년 3월 19일에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었습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 9월 20일에 남산동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있던 그 자리에서 대건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가 개교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한솔 이효상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구교구의 교구장은 주재용 신부님이신데,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습니다. 주재용 신부님께서는 해방 후에 우리 대건학교만이 아니라 왜관의 순심여자중학교와 김천의 성의중고등학교까지 설립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이 9월 16일인데, 무슨 날입니까?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하신 날입니다. 올해가 무슨 해입니까? ‘병오년’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순교하신 해가 1846년이었는데 그해도 병오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병오박해 180주년이 됩니다. 우리 학교가 설립된 1946년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하신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당시 우리 학교 이름을 ‘대건’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천에도 대건고등학교가 있고, 충남 논산에도 대건중고등학교가 있지만, 우리 학교가 제일 전통이 있고 역사가 있는 학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학교가 남산동에서 44년을 지냈고 1990년에 효성중고등학교와 함께 이곳 월성동으로 이사를 와서 36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중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고, 고등학교는 자사고로 한 10년을 보내다가 다시 일반고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어려움과 곡절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여러분들의 헌신과 봉사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주보 성인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김대건은 1836년 15살의 나이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1845년에 중국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되어 신부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1년 만에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부님의 그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오늘의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9,23-26)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3-24) 이순신 장군께서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生卽死, 死卽生.’ 즉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자기 한 몸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과 인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대건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교 8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대건중고등학교가 다시 90주년과 100주년을 향하여 힘차게 도약하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2026. 09. 16.
먼저 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세월 동안 우리 학교에 많은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학교 발전과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던 역대 교장 선생님들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동창회 여러분과 학부모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진그룹의 서중호 회장님께서 오셨는데, 회장님께서는 우리 대건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맡기 전부터 오랫동안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그 외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도움을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대구의 최초의 성당이 어디입니까? 계산성당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인 로베르 신부님께서 1885년에 칠곡 신나무골에 정착하면서 경상도를 사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로베르 신부님은 새방골을 거쳐 1891년에 대구 읍성으로 들어오셔서 현재의 계산성당 터를 매입하여 성당 건축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898년에 그 자리에 십자형의 한옥 성전을 지어 봉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교육시설인 ‘해성재’를 지었습니다. 그 해성재가 오늘날 효성초등학교입니다. 128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옥성당이 1901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어 1903년에 벽돌로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계산성당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이승훈 선생께서 당시 청나라에 동지사 사절로 따라갔다가 북경의 북당성당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1784년입니다. 그리고 1831년에 조선교구가 설정되었고, 1911년에 조선교구가 다시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교구는 조선교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고, 대구교구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관할하며 사목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교구의 교구청이 들어선 곳이 바로 남산동입니다.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님께서 교구의 기초를 놓기 위해 세 가지를 도와달라고 성모님께 청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학교입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라는 이름으로 1914년 10월 1일에 남산동에서 개교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교육시설을 함께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1945년 3월 19일에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었습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 9월 20일에 남산동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있던 그 자리에서 대건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가 개교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한솔 이효상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구교구의 교구장은 주재용 신부님이신데,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습니다. 주재용 신부님께서는 해방 후에 우리 대건학교만이 아니라 왜관의 순심여자중학교와 김천의 성의중고등학교까지 설립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이 9월 16일인데, 무슨 날입니까?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하신 날입니다. 올해가 무슨 해입니까? ‘병오년’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순교하신 해가 1846년이었는데 그해도 병오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병오박해 180주년이 됩니다. 우리 학교가 설립된 1946년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하신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당시 우리 학교 이름을 ‘대건’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천에도 대건고등학교가 있고, 충남 논산에도 대건중고등학교가 있지만, 우리 학교가 제일 전통이 있고 역사가 있는 학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학교가 남산동에서 44년을 지냈고 1990년에 효성중고등학교와 함께 이곳 월성동으로 이사를 와서 36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중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고, 고등학교는 자사고로 한 10년을 보내다가 다시 일반고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어려움과 곡절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여러분들의 헌신과 봉사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주보 성인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김대건은 1836년 15살의 나이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1845년에 중국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되어 신부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1년 만에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부님의 그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오늘의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9,23-26)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3-24) 이순신 장군께서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生卽死, 死卽生.’ 즉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자기 한 몸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과 인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대건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교 8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대건중고등학교가 다시 90주년과 100주년을 향하여 힘차게 도약하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