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총대리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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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를 기리며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유해 안치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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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유해 안치 미사
2025. 9. 6. 성모당
찬미예수님, 오늘 WYD를 준비하며 청년들과 신앙과 친교를 나누는 기회에,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의 유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는 내일 9월 7일 밀레니얼 세대의 첫 성인이 됩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시대의 청년청소년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붉은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백팩을 메고서, 우리와 똑같은 옷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소년이 가톨릭 성인이 되는데요, 2006년 10월에 사망한 15세의 짧은 생애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인터넷으로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살았기에, 우리도 각자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살아갈 것인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는 1991년 5월 3일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밀라노 이주 이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독서를 좋아하였고, 특히 컴퓨터 과학을 독자적으로 공부하였으며, 색소폰도 독학하였습니다.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였고, 종종 초콜릿잼 누텔라를 과다섭취하여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청빈을 존경하여 종종 단것이나 좋아하던 영화를 절제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여 쓰레기를 주웠으며, 동물을 사랑하고, 힘든 친구들을 돕고, 걸인과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전교하였고, 가족은 동방교회대학원, 성서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했고, 아쿠티스가 특별히 좋아한 아씨시에 별장도 구입했습니다.
아쿠티스는 7세에 첫 영성체를 받고, 자주 성체를 모셨고,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12세에 본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청소년을 돕는 청소년 리더로서 또래에게 신앙교육을 전하는 젊은 교리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아쿠티스는 그리스 메테오라의 동방교회 수도원을 순례하였고, 2005년 2월에는 프랑스 루르드, 2006년 2월에는 포르투갈 파티마를 순례하기는 했지만, 부모님의 예루살렘 성지순례 권유에는 “예수님이 지금 여기 우리 곁에 계신데, 왜 2000년 전 예수님이 계셨던 곳에 가야 하나요?” 대답하며, 밀라노의 성당들을 순례하기 시작했고, 아마도 성당에서 미사와 성체조배 등 성체신심을 실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쿠티스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사비오, 베르나데트 수비루,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등의 성인 생애에 관심을 보였으며, 자주 수호천사에게 기도하였고,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쿠티스는 웹사이트 디자이너로서 2006년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공인된 성체 기적과 성모 발현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수록하였습니다. 아쿠티스는 성바오로딸, 성바오로수도원,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예수사제회를 창립한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를 본받아 미디어 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아쿠티스는 2006년 10월 1일 목에 염증이 생겨 병원을 찾았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쿠티스는 자신의 고통을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하였고, 10월 12일 선종하였습니다.
아쿠티스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삶의 목적은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이 남을 모방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슬픔이지만, 하느님을 향한 시선은 행복입니다.”
네.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고유한 모습대로,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살아가도록 초대하는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와 함께, 2027년 WYD대구교구 대회를 앞둔 우리도,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색깔대로 기쁘고 행복하게 복음의 삶을 살아가고 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2025. 9. 6. 성모당
찬미예수님, 오늘 WYD를 준비하며 청년들과 신앙과 친교를 나누는 기회에,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의 유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는 내일 9월 7일 밀레니얼 세대의 첫 성인이 됩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시대의 청년청소년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붉은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백팩을 메고서, 우리와 똑같은 옷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소년이 가톨릭 성인이 되는데요, 2006년 10월에 사망한 15세의 짧은 생애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인터넷으로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살았기에, 우리도 각자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살아갈 것인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는 1991년 5월 3일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밀라노 이주 이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독서를 좋아하였고, 특히 컴퓨터 과학을 독자적으로 공부하였으며, 색소폰도 독학하였습니다.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였고, 종종 초콜릿잼 누텔라를 과다섭취하여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청빈을 존경하여 종종 단것이나 좋아하던 영화를 절제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여 쓰레기를 주웠으며, 동물을 사랑하고, 힘든 친구들을 돕고, 걸인과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전교하였고, 가족은 동방교회대학원, 성서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했고, 아쿠티스가 특별히 좋아한 아씨시에 별장도 구입했습니다.
아쿠티스는 7세에 첫 영성체를 받고, 자주 성체를 모셨고,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12세에 본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청소년을 돕는 청소년 리더로서 또래에게 신앙교육을 전하는 젊은 교리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아쿠티스는 그리스 메테오라의 동방교회 수도원을 순례하였고, 2005년 2월에는 프랑스 루르드, 2006년 2월에는 포르투갈 파티마를 순례하기는 했지만, 부모님의 예루살렘 성지순례 권유에는 “예수님이 지금 여기 우리 곁에 계신데, 왜 2000년 전 예수님이 계셨던 곳에 가야 하나요?” 대답하며, 밀라노의 성당들을 순례하기 시작했고, 아마도 성당에서 미사와 성체조배 등 성체신심을 실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쿠티스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사비오, 베르나데트 수비루,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등의 성인 생애에 관심을 보였으며, 자주 수호천사에게 기도하였고,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쿠티스는 웹사이트 디자이너로서 2006년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공인된 성체 기적과 성모 발현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수록하였습니다. 아쿠티스는 성바오로딸, 성바오로수도원,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예수사제회를 창립한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를 본받아 미디어 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아쿠티스는 2006년 10월 1일 목에 염증이 생겨 병원을 찾았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쿠티스는 자신의 고통을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하였고, 10월 12일 선종하였습니다.
아쿠티스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삶의 목적은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이 남을 모방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슬픔이지만, 하느님을 향한 시선은 행복입니다.”
네.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고유한 모습대로,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살아가도록 초대하는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와 함께, 2027년 WYD대구교구 대회를 앞둔 우리도,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색깔대로 기쁘고 행복하게 복음의 삶을 살아가고 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