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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리 말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 개강미사 강론)
  •   2025-10-01
  •   1370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 개강미사

 

2025. 9. 26. 대안성당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전례이며, 2025학년도 2학기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 개강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세요.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합니다.’하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세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고, 동시에 그가 예수님과 맺은 관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에게 “이 사람이 누구요?”하고 묻는다면, 그 답변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질문받은 사람의 정체성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두 표현됩니다. 만약 그 답변이 ‘아버지’라면, 그 관계는 부모-자녀관계일 것이고, 질문받은 사람의 정체성은 ‘아들 혹은 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답변했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며,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이심을 고백한 것이고, 베드로 자신을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밝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당신이 수행할 메시아 사명과 그 당시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메시아 사명이 매우 달랐기에 혼란을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정해진 때가 되어 오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이루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급진적이고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며, 무장 투쟁과 암살, 독립전쟁을 추진하던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 해방과 영토 회복을 위해 로마 군대를 무찌를 현세적이고 권세 있는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열혈당원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빌라도의 ‘유다인들의 왕’이냐는 질문에, ‘당신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아 사명을 밝히시는데요. 역시 세속적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의 메시아 사명이었습니다. 곧,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한다.’하십니다. 현세적 권력의 메시아를 기다렸던 이들은 이 말씀에 큰 실망을 느꼈고, 나아가 큰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은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방식으로 수행돼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적 문제를 풀어줄 메시아 예수님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해주셔야만 한다는 생각도 접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랑을 주신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방향으로, 우리가 따라갈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천상 고향을 향한 우리 인생의 순례 여정에서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떤 때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하느님은 말씀과 성체와 성령을 통하여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라 고백하며,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귀한 대접을 받는 자녀임을 확신합시다. <모래 위의 발자국> 얘기에서 가장 힘들 때 예수님이 우리를 업고 가셨음을 기억하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 신자가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2025. 9. 26. 대안성당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전례이며, 2025학년도 2학기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 개강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세요.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합니다.’하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세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고, 동시에 그가 예수님과 맺은 관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에게 “이 사람이 누구요?”하고 묻는다면, 그 답변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질문받은 사람의 정체성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두 표현됩니다. 만약 그 답변이 ‘아버지’라면, 그 관계는 부모-자녀관계일 것이고, 질문받은 사람의 정체성은 ‘아들 혹은 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답변했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며,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이심을 고백한 것이고, 베드로 자신을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밝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당신이 수행할 메시아 사명과 그 당시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메시아 사명이 매우 달랐기에 혼란을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정해진 때가 되어 오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이루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급진적이고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며, 무장 투쟁과 암살, 독립전쟁을 추진하던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 해방과 영토 회복을 위해 로마 군대를 무찌를 현세적이고 권세 있는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열혈당원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빌라도의 ‘유다인들의 왕’이냐는 질문에, ‘당신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아 사명을 밝히시는데요. 역시 세속적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의 메시아 사명이었습니다. 곧,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한다.’하십니다. 현세적 권력의 메시아를 기다렸던 이들은 이 말씀에 큰 실망을 느꼈고, 나아가 큰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은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방식으로 수행돼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적 문제를 풀어줄 메시아 예수님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해주셔야만 한다는 생각도 접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랑을 주신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방향으로, 우리가 따라갈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천상 고향을 향한 우리 인생의 순례 여정에서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떤 때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하느님은 말씀과 성체와 성령을 통하여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라 고백하며,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귀한 대접을 받는 자녀임을 확신합시다. <모래 위의 발자국> 얘기에서 가장 힘들 때 예수님이 우리를 업고 가셨음을 기억하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 신자가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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