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교구장/총대리

Archbishop/Bishop

총대리 말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   2026-04-07
  •   597

주님 부활 대축일

 

2026. 4. 5. 범어성당, 상인성당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네, 부활의 기쁨이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올해 2026년에 저는 베드로 사도를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고 맞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셨을 때, 베드로는 ‘맙소사, 주님, 결코 안됩니다.’ 반박하죠. 거룩한 변모 때엔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마시라는 뜻으로 ‘그냥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베드로는 최후의 만찬에서 발을 씻어주신다 했을 때도,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고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나갈 것’이라 할 때도,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 해요.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면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 하셨죠.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베드로는 예수님 말 안듣고 뭐했죠? 네, 잠에 빠져들어요. 이렇게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 곁에서 ‘교회의 반석이 될 베드로는 어찌 이렇게 반박하고, 거부하는 모습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한 제자들도 다 받아주셨구나!’ 생각하니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를 제정하시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시어 우리 인류를,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백조 이야기 아시죠?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게 있지만, 물속에서는 열나게 다리를 움직임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우리는 결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되며, 수난과 죽음의 고통 없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만 단독으로 가질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무덤이 비었다’ ‘주님을 어디로 모셔갔는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 두 제자가 달려갑니다.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았고요. 베드로가 들어갔죠. 그때까지도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했던 베드로가 빈무덤을 ‘보고 믿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온 생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또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외아들을 희생하여 구원할 만큼 하느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우리들이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이 하느님 자녀가 되고, 성체를 모시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시기를 바라십니다. 여기서 퀴즈를 드립니다. 혹시 신자가 받지 못하는 성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세례성사죠. 이미 세례로 신자가 되었으니, 세례를 중복으로 받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자녀가 되고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초대하십니다. 많은 이가 초대 받았지만, 응답한 소수만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되면,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의 목숨 바친 사랑을 보여 주셨음을 기억하고, 우리 생활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로 세례의 3직분,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받습니다. 세례의 왕직은 이웃사랑의 봉사 수행입니다. 사제직은 기도하고 전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언직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예비신자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때 하신 말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를 실천하는 예언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례 3직분의 실천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의 기쁨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6. 4. 5. 범어성당, 상인성당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네, 부활의 기쁨이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올해 2026년에 저는 베드로 사도를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고 맞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셨을 때, 베드로는 ‘맙소사, 주님, 결코 안됩니다.’ 반박하죠. 거룩한 변모 때엔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마시라는 뜻으로 ‘그냥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베드로는 최후의 만찬에서 발을 씻어주신다 했을 때도,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고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나갈 것’이라 할 때도,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 해요.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면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 하셨죠.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베드로는 예수님 말 안듣고 뭐했죠? 네, 잠에 빠져들어요. 이렇게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 곁에서 ‘교회의 반석이 될 베드로는 어찌 이렇게 반박하고, 거부하는 모습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한 제자들도 다 받아주셨구나!’ 생각하니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를 제정하시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시어 우리 인류를,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백조 이야기 아시죠?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게 있지만, 물속에서는 열나게 다리를 움직임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우리는 결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되며, 수난과 죽음의 고통 없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만 단독으로 가질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무덤이 비었다’ ‘주님을 어디로 모셔갔는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 두 제자가 달려갑니다.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았고요. 베드로가 들어갔죠. 그때까지도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했던 베드로가 빈무덤을 ‘보고 믿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온 생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또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외아들을 희생하여 구원할 만큼 하느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우리들이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이 하느님 자녀가 되고, 성체를 모시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시기를 바라십니다. 여기서 퀴즈를 드립니다. 혹시 신자가 받지 못하는 성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세례성사죠. 이미 세례로 신자가 되었으니, 세례를 중복으로 받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자녀가 되고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초대하십니다. 많은 이가 초대 받았지만, 응답한 소수만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되면,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의 목숨 바친 사랑을 보여 주셨음을 기억하고, 우리 생활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로 세례의 3직분,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받습니다. 세례의 왕직은 이웃사랑의 봉사 수행입니다. 사제직은 기도하고 전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언직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예비신자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때 하신 말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를 실천하는 예언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례 3직분의 실천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의 기쁨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
351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 번호 :  351
  • 등록일 :  2026-04-07
  • 조회 :  598
2026-04-07 598
350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주님 수난 예식 강론)
  • 번호 :  350
  • 등록일 :  2026-04-07
  • 조회 :  291
2026-04-07 291
349 예수님의 모범 (주님 만찬 미사 강론)
  • 번호 :  349
  • 등록일 :  2026-04-03
  • 조회 :  798
2026-04-03 798
348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 (주교회의 소공동체 소위원회 연수 파견 미사 강론)
  • 번호 :  348
  • 등록일 :  2026-01-28
  • 조회 :  1025
2026-01-28 1025
347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관덕정 주보 성 이윤일 요한 대축일 미사 강론)
  • 번호 :  347
  • 등록일 :  2026-01-26
  • 조회 :  777
2026-01-26 777
346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가르치셨다 (선목학원 중고교 관리자 연수 파견미사 강론)
  • 번호 :  346
  • 등록일 :  2026-01-09
  • 조회 :  682
2026-01-09 682
345 식별은 중요합니다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
  • 번호 :  345
  • 등록일 :  2026-01-02
  • 조회 :  2132
2026-01-02 2132
344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길은 (무학고등학교 개교 50주년 기념미사 강론)
  • 번호 :  344
  • 등록일 :  2025-11-24
  • 조회 :  1073
2025-11-24 1073
343 140년 신앙의 여정을 축하드리며 (주교좌 계산대성당 140주년 감사미사 강론)
  • 번호 :  343
  • 등록일 :  2025-11-17
  • 조회 :  1092
2025-11-17 1092
342 세계 평화를 위한 묵주 기도를 바칩시다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미사 강론)
  • 번호 :  342
  • 등록일 :  2025-10-13
  • 조회 :  1070
2025-10-13 1070
341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 개강미사 강론)
  • 번호 :  341
  • 등록일 :  2025-10-01
  • 조회 :  1371
2025-10-01 1371
340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를 기리며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유해 안치 미사 강론)
  • 번호 :  340
  • 등록일 :  2025-09-09
  • 조회 :  1379
2025-09-09 1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