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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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대화 (2026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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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
2026.5.23. 대신학교 성김대건기념관
‘2026년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령의 은혜 많이 받으셨습니까? 교구성령쇄신봉사회의 수고로 이곳 성김대건 기념관에서 문다캇 신부님 강의도 듣고, 성체현시와 치유기도도 하셨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렇지요? 감사의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보편교회는 2024년 10월 반포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최종문서에 따라서 이행단계를 살고 있습니다. 시노드 최종문서는 2가지를 강조하는데요. ‘회심’과 ‘새로운 방법’입니다. 회심은 하느님 관계, 인간상호관계의 회심입니다. 새로운 방법은 최종문서에서 예수님 말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로 표현됩니다. 밤새 허탕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노를 저어 배를 옮기는 큰 수고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왼쪽이었다면 새로운 방법 곧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는’ 작지만 참신한 노력을 요청하십니다. 그 결과로 백 쉰 세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회심은 하느님관계, 인간관계의 회복과 영적기쁨을 얻게합니다. 새로운 방법은 물고기로 아침식사를 한 것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시노드 최종문서는 우리에게 ‘영적기쁨과 현실적인 성과’를 모두 거두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의 회심과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 구체적으로 ‘성령 안에서 대화’입니다. 2021년 시노드 준비 때는 이름이 ‘경청과 대화의 시노드 모임’이었습니다. 본당에서 신부님, 수녀님, 간부, 신자들이 시노드 모임을 하는데, 모래시계를 사용해서 한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지 않고 골고루 말하는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내용엔 불평불만이 많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부터는 이름과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대화’로 이름 바뀌었죠. 순서로는, 주제강의를 아예 성당에서 하고 강의 후 3분간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나서 조별모임 장소에 가서, 다시 3분 침묵기도하고, 3명이 3분씩 나누기하고, 다시 3분 침묵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다시 3명이 3분씩 나누기하고, 다시 3분 침묵기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처음의 ‘시노드 모임’과 달라졌습니다. ‘성령 안에서 대화’에는 주제강의 후 침묵기도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조별장소에 가서도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3명이 말하고 다시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성령의 음성과 사람의 말이 어우러지게 했더니, 내 옆사람을 통해 하시는 성령의 음성이 느껴지고, 침묵기도때는 들은 것들 안에서 종합적으로 성령의 음성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똑같이 모래시계를 놓고 했지만, 성령을 청하는 기도와 내적준비가 부족하면, 자칫 성령의 음성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평불만을 말하게 되므로, 기도와 내적준비를 잘해야 ‘성령 안에서 대화’를 잘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하루에도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는 침묵시간이 틈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소서 성령님’기도와 함께 침묵기도하면서 하루를 이끌어주시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말씀전례 독서 후, 강론후의 잠깐 침묵과, 영성체후 침묵도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때 ‘주례자가 왜 다음기도 안하시는가?’ 조급한 마음 갖지 마시고 성령의 음성 들으시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뜻은 남을 탓하고 불평불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뮈라고 하셨습니까?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바치셨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일을 하는지 모릅니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탓하고 불평불만하고 원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순명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께 사랑받고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번 축제가 ‘성령을 받아라’를 주제로 선정한 뜻은, 이렇게 십자가에 목숨바친 사랑을 받았으니, 이웃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을 탓하거나 불평불만을 하지말고, 어떻게 하자고요? 용서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떠오르나요? 만약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사건,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상처가 있다면,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아버지 하느님의 힘으로, 예수님 흘리신 피의 힘으로, 예수님 들려주신 말씀의 힘으로, 또 성령의 능력으로 모두 용서하도록 합시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를 봉헌하며, 모두 용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쁘게 성체를 모시고, 말씀과 성체와 성령의 친교 속에서, 하느님 용서와 치유의 충만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026.5.23. 대신학교 성김대건기념관
‘2026년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령의 은혜 많이 받으셨습니까? 교구성령쇄신봉사회의 수고로 이곳 성김대건 기념관에서 문다캇 신부님 강의도 듣고, 성체현시와 치유기도도 하셨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렇지요? 감사의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보편교회는 2024년 10월 반포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최종문서에 따라서 이행단계를 살고 있습니다. 시노드 최종문서는 2가지를 강조하는데요. ‘회심’과 ‘새로운 방법’입니다. 회심은 하느님 관계, 인간상호관계의 회심입니다. 새로운 방법은 최종문서에서 예수님 말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로 표현됩니다. 밤새 허탕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노를 저어 배를 옮기는 큰 수고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왼쪽이었다면 새로운 방법 곧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는’ 작지만 참신한 노력을 요청하십니다. 그 결과로 백 쉰 세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회심은 하느님관계, 인간관계의 회복과 영적기쁨을 얻게합니다. 새로운 방법은 물고기로 아침식사를 한 것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시노드 최종문서는 우리에게 ‘영적기쁨과 현실적인 성과’를 모두 거두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의 회심과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 구체적으로 ‘성령 안에서 대화’입니다. 2021년 시노드 준비 때는 이름이 ‘경청과 대화의 시노드 모임’이었습니다. 본당에서 신부님, 수녀님, 간부, 신자들이 시노드 모임을 하는데, 모래시계를 사용해서 한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지 않고 골고루 말하는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내용엔 불평불만이 많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부터는 이름과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대화’로 이름 바뀌었죠. 순서로는, 주제강의를 아예 성당에서 하고 강의 후 3분간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나서 조별모임 장소에 가서, 다시 3분 침묵기도하고, 3명이 3분씩 나누기하고, 다시 3분 침묵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다시 3명이 3분씩 나누기하고, 다시 3분 침묵기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처음의 ‘시노드 모임’과 달라졌습니다. ‘성령 안에서 대화’에는 주제강의 후 침묵기도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조별장소에 가서도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3명이 말하고 다시 침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성령의 음성과 사람의 말이 어우러지게 했더니, 내 옆사람을 통해 하시는 성령의 음성이 느껴지고, 침묵기도때는 들은 것들 안에서 종합적으로 성령의 음성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똑같이 모래시계를 놓고 했지만, 성령을 청하는 기도와 내적준비가 부족하면, 자칫 성령의 음성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평불만을 말하게 되므로, 기도와 내적준비를 잘해야 ‘성령 안에서 대화’를 잘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하루에도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는 침묵시간이 틈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소서 성령님’기도와 함께 침묵기도하면서 하루를 이끌어주시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말씀전례 독서 후, 강론후의 잠깐 침묵과, 영성체후 침묵도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때 ‘주례자가 왜 다음기도 안하시는가?’ 조급한 마음 갖지 마시고 성령의 음성 들으시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뜻은 남을 탓하고 불평불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뮈라고 하셨습니까?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바치셨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일을 하는지 모릅니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탓하고 불평불만하고 원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순명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께 사랑받고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번 축제가 ‘성령을 받아라’를 주제로 선정한 뜻은, 이렇게 십자가에 목숨바친 사랑을 받았으니, 이웃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을 탓하거나 불평불만을 하지말고, 어떻게 하자고요? 용서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떠오르나요? 만약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사건,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상처가 있다면,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아버지 하느님의 힘으로, 예수님 흘리신 피의 힘으로, 예수님 들려주신 말씀의 힘으로, 또 성령의 능력으로 모두 용서하도록 합시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제 파견미사를 봉헌하며, 모두 용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쁘게 성체를 모시고, 말씀과 성체와 성령의 친교 속에서, 하느님 용서와 치유의 충만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