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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결국 선물입니다 (가르멜의 성조 엘리야 축일 미사 강론)
  •   2026-07-20
  •   633

가르멜의 성조 엘리야 축일 미사

 

7월 20일 오전 7시, 대구 가르멜 수녀회

 

사랑하는 가르멜 수녀님들, 주님 은총 안에서 모두 평안하신가요?

이렇게 아침 수도원을 찾으신 형제 자매님들도 모두 평안하시죠?

저는 평안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 처지 입니다.

충주 가르멜 수녀님들께서 대구에 들르게 되면 안부전해달라 하셨어요, 모두 행복하시라구요.

 

살아 생전에 처음 가르멜의 성조 엘리야 축일을 거행해 보네요. 이게 다 수녀님들 덕분입니다.

글쎄요, 무엇을 묵상하고 나눠야할까요? 고민이 됩니다. 이미 수녀님들께서 성조이신 엘리야의 박사님들이실테니까요. 오히려 제가 여러분께 청해야 맞는것 같은데요.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믿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믿음 살이는 어떤 것인지를 조금 생각해 봅니다.

 

엘리야야 말로 하느님의 용맹한 예언자죠. 그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대결을 벌이며 야훼 하느님이야말로 참 하느님을 용기있게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증거한 사람입니다. 또한 구약의 예언자 중,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죠. 그의 지상 삶이 하늘의 삶이었기에 저승을 거치지 않을 정도로 우러르는 그런 예언자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등장하듯,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함께 등장하는 예언자 중의 예언자 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그 길을 닦으러 다시 올 예언자로 인식하기에 이르는 그런 예언자 입니다.

 

그런 위대함과 오늘의 예언자의 처지는 조금 대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믿음의 얼굴이고, 믿음의 진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 용감하던 엘리야도 왕비 이제벨의 위협과 추적 앞에 절망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는 더욱 그것을 잘 전해주죠.

언제나 영광 안에 머물고 싶어하고,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킬 것이라 고백 하지만, 그 분을 배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고 이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누추한 모습에 깊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 이 믿음의 바위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노라고 선언하시죠.

 

믿음은 이처럼 나약하고 누추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자신의 비참함과 나약함을 바닥 끝까지 경험하고, 인정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 절망하는 엘리야, 자신의 나약함에 절규하는 베드로, 그들에게 주님은 믿음의 은총을 선물하십니다. 믿음은 결국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쇄의 구역 안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 저처럼 어떤 직무를 맡아지는 것은 초대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의 나약함을 온전히 알아들으라는 초대이고, 그 삶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 이들에게, 주님은 믿음이란 보물을 선물하시는 것이 신앙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수녀님들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모습, 비천하고 주님께 다다르기에 한 없이 멀리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셨나요?

그 때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게 하는 믿음이란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 예언자의 축일을 지내며, 위대한 예언자가 아닌, 비참한 인간에게 내리시는 위대한 주님의 선물인 믿음을 기억하는 하루,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믿음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오늘을 살아봅시다.

7월 20일 오전 7시, 대구 가르멜 수녀회

 

사랑하는 가르멜 수녀님들, 주님 은총 안에서 모두 평안하신가요?

이렇게 아침 수도원을 찾으신 형제 자매님들도 모두 평안하시죠?

저는 평안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 처지 입니다.

충주 가르멜 수녀님들께서 대구에 들르게 되면 안부전해달라 하셨어요, 모두 행복하시라구요.

 

살아 생전에 처음 가르멜의 성조 엘리야 축일을 거행해 보네요. 이게 다 수녀님들 덕분입니다.

글쎄요, 무엇을 묵상하고 나눠야할까요? 고민이 됩니다. 이미 수녀님들께서 성조이신 엘리야의 박사님들이실테니까요. 오히려 제가 여러분께 청해야 맞는것 같은데요.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믿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믿음 살이는 어떤 것인지를 조금 생각해 봅니다.

 

엘리야야 말로 하느님의 용맹한 예언자죠. 그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대결을 벌이며 야훼 하느님이야말로 참 하느님을 용기있게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증거한 사람입니다. 또한 구약의 예언자 중,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죠. 그의 지상 삶이 하늘의 삶이었기에 저승을 거치지 않을 정도로 우러르는 그런 예언자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등장하듯,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함께 등장하는 예언자 중의 예언자 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그 길을 닦으러 다시 올 예언자로 인식하기에 이르는 그런 예언자 입니다.

 

그런 위대함과 오늘의 예언자의 처지는 조금 대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믿음의 얼굴이고, 믿음의 진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 용감하던 엘리야도 왕비 이제벨의 위협과 추적 앞에 절망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는 더욱 그것을 잘 전해주죠.

언제나 영광 안에 머물고 싶어하고,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킬 것이라 고백 하지만, 그 분을 배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고 이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누추한 모습에 깊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 이 믿음의 바위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노라고 선언하시죠.

 

믿음은 이처럼 나약하고 누추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자신의 비참함과 나약함을 바닥 끝까지 경험하고, 인정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 절망하는 엘리야, 자신의 나약함에 절규하는 베드로, 그들에게 주님은 믿음의 은총을 선물하십니다. 믿음은 결국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쇄의 구역 안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 저처럼 어떤 직무를 맡아지는 것은 초대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의 나약함을 온전히 알아들으라는 초대이고, 그 삶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 이들에게, 주님은 믿음이란 보물을 선물하시는 것이 신앙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수녀님들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모습, 비천하고 주님께 다다르기에 한 없이 멀리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셨나요?

그 때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게 하는 믿음이란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 예언자의 축일을 지내며, 위대한 예언자가 아닌, 비참한 인간에게 내리시는 위대한 주님의 선물인 믿음을 기억하는 하루,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믿음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오늘을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