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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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높이시는 하느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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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승천대축일 미사
2026. 8. 15 주교좌 범어대성당
사랑하는 범어성당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네, 그렇게 보입니다. 지금 이 얼굴, 하느님 앞에서 진지하게, 사랑을 찾고 살려는 얼굴을, 성전 뿐 아니라, 성전 밖에서도 잘 간직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마태 5,13-16 참조) 는 주님 명령을 따르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실천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한가지 공지사항을 먼저 말씀드리면, 신부님 강론이 지루할 때, 주보를 펼치는 습관이 있잖아요. 오늘은 소용없어요. 거기에도 제 글이 담겨 있으니까요?
오늘은 신앙의 대축제날 입니다. 축제라면 모두 기쁜 날이어야 할 텐데, 우리 신앙의 축제가 대략 비슷한데, ‘성모 승천’ 축제도, 성모님의 영광과 기쁨에 우리는 그저 ‘환호와 경외’를 드러내는 데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날처럼 지냅니다. 과연 그런 날일까요?
오늘이 어떤 날이고, 어떤 기쁨이 있는지를 조금만 살펴 보고 싶습니다. 성경은 성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삶과 죽음에 관해 믿는 이들은 약 6세기경 부터 집중적으로 묵상합니다. 마침내, 믿는 이들은 성모님께서는, 죽지 않고 ‘잠들었다’ (Dormitio Mariae)고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성모님께서는 특출하시어 죽지않았다는 놀라운 기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성모님의 생애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오늘 성모님의 승천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1950년, 성모님의 승천을 공포 하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생애를 마치신 다음, 천상 영광에 올림 받으셨다.” (Maria e assunta alla gloria celeste)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에도 성모님의 죽음은 언급되지 않고, 생애 전체가 하늘로 올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또 그것은 “성모님께서 공간을 뚫고 올라가 ‘하늘’ 이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상의 영광으로 올려지셨다는 표현은, 그분께서 천상 영광이라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변화하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그 분은 ‘영적인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1코린 15,44)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죽음의 문제 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일반적인 진리가, 내 인생의 주제로 들어오면 우리는 허둥지둥합니다. 어떤 이는 현세에서 자신의 이익과 영달에 집착하며 삶의 허무를 달래고, 어떤 이는 이 삶을 지속해 나갈 건강에 몰두하며 현세를 움켜쥐려 애쓰며 초라한 마지막을 견딥니다.
이처럼 죽음은 인간의 삶을 삼켜버리는가? 믿는 이들의 질문도 비슷하였습니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녀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 운명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하고 질문합니다.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성부 하느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계시던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지셨듯이, 예수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있던 성모님께서도 하늘로 불러올리심을 받은 것이죠. 부활하신 아드님처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갔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성모승천의 의미이며, 그러기에, 이 사건은 성모님 개인이 부활의 영광을 미리 입은 기쁨을 넘어, 믿는 이 모두의 부활에 관해 말해 주는 기쁜 날입니다. 마리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하느님께서 죽음보다 강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떻게 이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성모님의 삶과 신앙에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성모님의 삶에는 흔히 생각하듯, 예수님을 낳은 공로 보다 더 큰 위대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생 그분을 따랐고,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부활까지, 언제나 그분을 생명의 주님으로 믿는, 주님 가르침의 첫 번째 제자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제자이지만, 그분은 자신을 위대한, 어떤 큰 존재로 바라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비천한 여종을 하느님께서 들어 높이셨다.” (루카 1, 46-55 참조)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태도가 ‘믿음의 승리를 위한 작지만 위대한 첫 걸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성인들도 대부분 한결같습니다. 으뜸 사도인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하고 고백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8-9)고 말하며 자신을 낮춥니다.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고백하는 나자렛 시골 처녀를 찾아오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이 작은 믿음들을 통하여 일하시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높이실’(마태 23,12 참조)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빛나는 인생과 위대한 나를 꿈꾸라고, 거기에 인간의 완성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오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고, 하느님과 형제를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거기에 죽음을 넘어선 참생명과 인간의 완성이 있다고, 그것이 성모님처럼 하느님 영광에 드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매우 아름답고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약속의 땅을향해 떠나는 것과 같은 어려운 결단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기쁜 날, 세상의 가르침에서 탈출하여 섬김과 사랑, 그리고 믿음의 삶을 꿈꾸는 날이 됩시다. 성모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영적 기쁨의 하루를 살아갑시다. 2026. 8. 15 주교좌 범어대성당
사랑하는 범어성당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네, 그렇게 보입니다. 지금 이 얼굴, 하느님 앞에서 진지하게, 사랑을 찾고 살려는 얼굴을, 성전 뿐 아니라, 성전 밖에서도 잘 간직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마태 5,13-16 참조) 는 주님 명령을 따르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실천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한가지 공지사항을 먼저 말씀드리면, 신부님 강론이 지루할 때, 주보를 펼치는 습관이 있잖아요. 오늘은 소용없어요. 거기에도 제 글이 담겨 있으니까요?
오늘은 신앙의 대축제날 입니다. 축제라면 모두 기쁜 날이어야 할 텐데, 우리 신앙의 축제가 대략 비슷한데, ‘성모 승천’ 축제도, 성모님의 영광과 기쁨에 우리는 그저 ‘환호와 경외’를 드러내는 데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날처럼 지냅니다. 과연 그런 날일까요?
오늘이 어떤 날이고, 어떤 기쁨이 있는지를 조금만 살펴 보고 싶습니다. 성경은 성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삶과 죽음에 관해 믿는 이들은 약 6세기경 부터 집중적으로 묵상합니다. 마침내, 믿는 이들은 성모님께서는, 죽지 않고 ‘잠들었다’ (Dormitio Mariae)고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성모님께서는 특출하시어 죽지않았다는 놀라운 기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성모님의 생애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오늘 성모님의 승천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1950년, 성모님의 승천을 공포 하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생애를 마치신 다음, 천상 영광에 올림 받으셨다.” (Maria e assunta alla gloria celeste)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에도 성모님의 죽음은 언급되지 않고, 생애 전체가 하늘로 올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또 그것은 “성모님께서 공간을 뚫고 올라가 ‘하늘’ 이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상의 영광으로 올려지셨다는 표현은, 그분께서 천상 영광이라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변화하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그 분은 ‘영적인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1코린 15,44)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죽음의 문제 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일반적인 진리가, 내 인생의 주제로 들어오면 우리는 허둥지둥합니다. 어떤 이는 현세에서 자신의 이익과 영달에 집착하며 삶의 허무를 달래고, 어떤 이는 이 삶을 지속해 나갈 건강에 몰두하며 현세를 움켜쥐려 애쓰며 초라한 마지막을 견딥니다.
이처럼 죽음은 인간의 삶을 삼켜버리는가? 믿는 이들의 질문도 비슷하였습니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녀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 운명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하고 질문합니다.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성부 하느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계시던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지셨듯이, 예수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있던 성모님께서도 하늘로 불러올리심을 받은 것이죠. 부활하신 아드님처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갔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성모승천의 의미이며, 그러기에, 이 사건은 성모님 개인이 부활의 영광을 미리 입은 기쁨을 넘어, 믿는 이 모두의 부활에 관해 말해 주는 기쁜 날입니다. 마리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하느님께서 죽음보다 강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떻게 이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성모님의 삶과 신앙에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성모님의 삶에는 흔히 생각하듯, 예수님을 낳은 공로 보다 더 큰 위대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생 그분을 따랐고,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부활까지, 언제나 그분을 생명의 주님으로 믿는, 주님 가르침의 첫 번째 제자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제자이지만, 그분은 자신을 위대한, 어떤 큰 존재로 바라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비천한 여종을 하느님께서 들어 높이셨다.” (루카 1, 46-55 참조)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태도가 ‘믿음의 승리를 위한 작지만 위대한 첫 걸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성인들도 대부분 한결같습니다. 으뜸 사도인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하고 고백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8-9)고 말하며 자신을 낮춥니다.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고백하는 나자렛 시골 처녀를 찾아오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이 작은 믿음들을 통하여 일하시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높이실’(마태 23,12 참조)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빛나는 인생과 위대한 나를 꿈꾸라고, 거기에 인간의 완성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오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고, 하느님과 형제를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거기에 죽음을 넘어선 참생명과 인간의 완성이 있다고, 그것이 성모님처럼 하느님 영광에 드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매우 아름답고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약속의 땅을향해 떠나는 것과 같은 어려운 결단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기쁜 날, 세상의 가르침에서 탈출하여 섬김과 사랑, 그리고 믿음의 삶을 꿈꾸는 날이 됩시다. 성모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영적 기쁨의 하루를 살아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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