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부교구장 말씀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 믿음 (압량성당 30주년 기념미사 강론)
  •   2026-09-01
  •   606

압량성당 30주년 기념미사

 

2026. 8. 30.

 

사랑하는 압량성당 교우 여러분, 주님 은총 안에서 모두 평안하신가요?

네, 우리가 말하는 평안은 그저 근심 걱정 없는 태평성대에서 오는 평안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지금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의 얼굴이 평안하기를, 그리고 그 얼굴을 언제나 간직하기를, 이 성전 밖에서도 그 얼굴이 한결같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 제자의 얼굴입니다. 

 

오늘은 성당 봉헌 30주년을 맞이하는 기쁜 날입니다. 

30년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름드리나무’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드셨죠. “겨자씨 자라나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온갖 새들이 깃들일 수 있게 된다”고. 우리 교우들께서 가꿔 오신 성전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그 성전은 외적인 성당이 아닌, 우리 마음의 성전, 공동체라는 성전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믿음들이 모여 30년이란 시간 동안, 정화되고 자라나, 이웃 형제자매들이 기꺼이 쉴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이 되었음에 감사드리고, 또 축하드리며, 이 곳에서 참 신앙의 진리가 더욱 힘차게 선포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뜻깊은 날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 말씀을 짧게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흔히 우리는 ‘믿음’ 하면, 무엇인가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행위나,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등을 나의 생각과 의지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그래서 ‘아멘‘ 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그 흔들리지 않는 무엇을 좋은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믿음의 다른 차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을, 나의 생각을 입으로 고백하는 그 무엇으로 여긴다면, 베드로 사도는 정말 믿음의 반석입니다. 지난 주 복음, 오늘 복음의 앞 구절에서 사도는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십니다.’ 라고 믿음의 첫째 사도 다운 고백을 하였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오늘 그런 칭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사탄아’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말이죠. 믿음의 반석에서 사탄으로, 이 극적인 반전이 어째서 일어났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분명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했지만, 자신이 여전히 믿음의 길 위에 있음을 간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자기의 믿음에 멈춰서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곳이 어디였을까요? 그 길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다 내어주어야 하는 골고타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수난의 예고에 놀랐고, 지금의 성취를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에 펄쩍 뛰며, ‘맙소사, 주님께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소리칩니다. 예수님을 막아서 꼭 붙들고 가르치려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회유하던 사탄의 음성을 닮았습니다. “나를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던 사탄의 음성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즉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외치십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분들에 따르면 이 말은 ‘사탄아, 너는 내 뒤로 가 있어라’ 가 더 직역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말인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이는, 자신의 뜻을 앞세워,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죠.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뒤에 서 있는 자, 그 분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를 따르는 자란?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좋은 믿음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고 주님 앞에서 지금의 자리를 고수하려는 태도는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지금 내가 깨달은 것들, 지금 고백하는 거룩한 말들로 그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 하느님의 사랑이 가라는 곳으로 언제나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을 버릴 때 그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 믿음살이에서 져야 할 가장 큰 십자가는 뭘까요? 저는 그것을, ‘우리 자신’ 이라는 십자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보다 앞서가려는,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려하고, 모든 이에 앞서 있으려 하고, 심지어 믿음의 길에서 ‘믿음의 첫자리를 차지하려 다투던 제자’와 다르지 않게 살려 합니다. 

 

예수님 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나’ 자신이 진정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닐까요? 그것이 때로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는 이들까지도 막아서며, 그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유혹자가 되기도 합니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가 있어라’는 명령은 그런 우리들에게 외치실 주님의 목소리 입니다. 

 

사랑하는 압량 성당 교우 여러분!

믿음의 성전을 가꿔온 3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주님을 따랐던 발자국, 우리 보다 앞서가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주님의 앞을 가로막지 않고, ‘나‘라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지치지 않고 따라갈 때,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믿음이며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타자를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 오늘부터 다시 예루살렘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을, 사랑으로 앞세우며, 첫 날의 걸음을 다시 시작합시다. 그 분과 함께 그분의 사랑이 가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진정 우리를 구원하는 좋은 믿음입니다. 

2026. 8. 30.

 

사랑하는 압량성당 교우 여러분, 주님 은총 안에서 모두 평안하신가요?

네, 우리가 말하는 평안은 그저 근심 걱정 없는 태평성대에서 오는 평안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지금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의 얼굴이 평안하기를, 그리고 그 얼굴을 언제나 간직하기를, 이 성전 밖에서도 그 얼굴이 한결같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 제자의 얼굴입니다. 

 

오늘은 성당 봉헌 30주년을 맞이하는 기쁜 날입니다. 

30년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름드리나무’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드셨죠. “겨자씨 자라나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온갖 새들이 깃들일 수 있게 된다”고. 우리 교우들께서 가꿔 오신 성전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그 성전은 외적인 성당이 아닌, 우리 마음의 성전, 공동체라는 성전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믿음들이 모여 30년이란 시간 동안, 정화되고 자라나, 이웃 형제자매들이 기꺼이 쉴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이 되었음에 감사드리고, 또 축하드리며, 이 곳에서 참 신앙의 진리가 더욱 힘차게 선포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뜻깊은 날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 말씀을 짧게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흔히 우리는 ‘믿음’ 하면, 무엇인가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행위나,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등을 나의 생각과 의지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그래서 ‘아멘‘ 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그 흔들리지 않는 무엇을 좋은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믿음의 다른 차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을, 나의 생각을 입으로 고백하는 그 무엇으로 여긴다면, 베드로 사도는 정말 믿음의 반석입니다. 지난 주 복음, 오늘 복음의 앞 구절에서 사도는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십니다.’ 라고 믿음의 첫째 사도 다운 고백을 하였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오늘 그런 칭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사탄아’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말이죠. 믿음의 반석에서 사탄으로, 이 극적인 반전이 어째서 일어났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분명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했지만, 자신이 여전히 믿음의 길 위에 있음을 간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자기의 믿음에 멈춰서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곳이 어디였을까요? 그 길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다 내어주어야 하는 골고타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수난의 예고에 놀랐고, 지금의 성취를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에 펄쩍 뛰며, ‘맙소사, 주님께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소리칩니다. 예수님을 막아서 꼭 붙들고 가르치려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회유하던 사탄의 음성을 닮았습니다. “나를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던 사탄의 음성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즉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외치십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분들에 따르면 이 말은 ‘사탄아, 너는 내 뒤로 가 있어라’ 가 더 직역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말인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이는, 자신의 뜻을 앞세워,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죠.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뒤에 서 있는 자, 그 분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를 따르는 자란?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좋은 믿음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고 주님 앞에서 지금의 자리를 고수하려는 태도는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지금 내가 깨달은 것들, 지금 고백하는 거룩한 말들로 그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 하느님의 사랑이 가라는 곳으로 언제나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을 버릴 때 그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 믿음살이에서 져야 할 가장 큰 십자가는 뭘까요? 저는 그것을, ‘우리 자신’ 이라는 십자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보다 앞서가려는,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려하고, 모든 이에 앞서 있으려 하고, 심지어 믿음의 길에서 ‘믿음의 첫자리를 차지하려 다투던 제자’와 다르지 않게 살려 합니다. 

 

예수님 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나’ 자신이 진정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닐까요? 그것이 때로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는 이들까지도 막아서며, 그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유혹자가 되기도 합니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가 있어라’는 명령은 그런 우리들에게 외치실 주님의 목소리 입니다. 

 

사랑하는 압량 성당 교우 여러분!

믿음의 성전을 가꿔온 3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주님을 따랐던 발자국, 우리 보다 앞서가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주님의 앞을 가로막지 않고, ‘나‘라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지치지 않고 따라갈 때,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믿음이며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타자를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 오늘부터 다시 예루살렘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을, 사랑으로 앞세우며, 첫 날의 걸음을 다시 시작합시다. 그 분과 함께 그분의 사랑이 가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진정 우리를 구원하는 좋은 믿음입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
11 이웃을 향한 성심의 사랑 (관덕정 후원회원 미사 강론)
  • 번호 :  11
  • 등록일 :  2026-09-07
  • 조회 :  523
2026-09-07 523
10 이미 와계신 하느님 (대신학원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 번호 :  10
  • 등록일 :  2026-09-07
  • 조회 :  555
2026-09-07 555
9 생명을 향한 길 (창조시기 개막미사 강론)
  • 번호 :  9
  • 등록일 :  2026-09-03
  • 조회 :  465
2026-09-03 465
8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 믿음 (압량성당 30주년 기념미사 강론)
  • 번호 :  8
  • 등록일 :  2026-09-01
  • 조회 :  606
2026-09-01 606
7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높이시는 하느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 번호 :  7
  • 등록일 :  2026-08-18
  • 조회 :  630
2026-08-18 630
6 믿음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삶 (교구청 8월 미사 강론)
  • 번호 :  6
  • 등록일 :  2026-08-06
  • 조회 :  513
2026-08-06 513
5 우리를 빚으시는 옹기장이 하느님 (성경통독 40주간 5기 수료식 및 감사미사 강론)
  • 번호 :  5
  • 등록일 :  2026-08-03
  • 조회 :  580
2026-08-03 580
4 인생이란 밭에 숨겨진 보물 (비산성당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미사 강론)
  • 번호 :  4
  • 등록일 :  2026-07-27
  • 조회 :  567
2026-07-27 567
3 믿음은 결국 선물입니다 (가르멜의 성조 엘리야 축일 미사 강론)
  • 번호 :  3
  • 등록일 :  2026-07-20
  • 조회 :  746
2026-07-20 746
2 부교구장 취임 축하식 답사
  • 번호 :  2
  • 등록일 :  2026-07-01
  • 조회 :  953
2026-07-01 953
1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부교구장 취임 미사 강론)
  • 번호 :  1
  • 등록일 :  2026-07-01
  • 조회 :  1005
2026-07-01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