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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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향한 길 (창조시기 개막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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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시기 개막미사
2026. 9. 1. 내당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여름 참 유난히 더웠죠. 아직도 끝나진 않았지만,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요, 전문가들은 올 해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자조섞인 전망을 내놓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해지는 지구촌 곳곳의 자연 재해 소식은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혹독한 현실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한 현실 앞에서 교회는 우리를 초대합니다.
교회는 오늘,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을 시작으로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인 10월 4일까지 창조시기(Season of Creation)를 지냅니다. 동방 교회가 오늘을 ‘창조‘를 기념하는 기도의 날로 선포하였고, 이후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이 전통을 확대하여, 9월 1일부터 10월 4일 까지를 창조를 위한 특별한 기간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5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로 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우리 교회도 이 창조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언뜻 ’환경 보호를 강조하는 한 달‘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너머를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우리는 이 기간 무엇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기도의 날을 시작하며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Canticle of the Creatures), 우리에겐 ‘태양의 찬가‘로 더 알려진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사춘기를 막 지날 때, 성인의 그 기도를 읽었습니다. “형제인 태양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누님인 달과 별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누이인 물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는 글귀가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인의 이 기도를 그저 거룩한 젊은이가 감성에 젖어서 읉조리는 ‘감성충만’ 정도로 이해했고, 또 그것대로 감동받았습니다.
실상 그 분의 기도는 저의 ‘가벼운 읽기’와는 사뭇 다른, 세상 모든 피조물 안에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깊은 영성의 기도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그 기도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현실 앞에서 먼저드는 생각은 우리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오독하며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시니 좋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 하여라…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 28)는 축복의 말씀에, 우리가 피조물의 통치자의 지위를 인정받기라도 한 양, 세상을 우리와 피조물로 나누며 살아 왔습니다. 우리는 주인이고, 피조물은 우리의 도구에 불과하다 여기며 살아 왔습니다.
결국 피조물은 우리 욕망을 채우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욕망이 파헤치고 파괴한 자연, 하늘을 쪼개고 땅을 갈라놓을 것 같은 전쟁의 포탄과 굉음이 지배 하는 일상, 그리고 그치지 않는 자연 재해의 놀라운 소식. 여전히 제어되지 않는 우리의 탐욕이 빚어낸 이 광경들을 목도하며 우리들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바라봅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이사 2,4)는 이사야의 예언을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국가 단위의 전쟁과 무기 생산을 중단하라는 촉구를 넘어, 우리 인간이 더 이상 피조물과 나를 가르고, 그들을 우리 삶의 도구로 여기며, 지배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인식, 마음의 칼과 창을 버리라는 호소이며, 그래서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하나된 세상, ‘보시니 좋더라’ 하신 주님 말씀을 되새기라는 촉구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지배와 다스림이 아니라, 하느님의 연민으로 세상과 피조물을 바라보고,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며, 빼앗긴 낙원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시작하는 창조시기는 그저 자연을 보호하여 우리가 걱정 없는 세상을 살기 위한 캠페인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창조의 첫날로 돌아가는 일이어야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을 잠깐 돌아봅시다.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의 절망을 온 몸으로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 한 후에도 희망과 생명을 예언합니다. 그 예언은,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어떤 상황의 반전이나, 유배의 땅에서 풀려나는 눈앞의 희망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소망은 ‘생명이 하느님께로 부터 오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듣고, 그분께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처럼,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깊어져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됩니다. 힘주어 그는 말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난다.”고…. 하느님의 생명이 다다르는 곳은, 죽음 마저도 생명의 장소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죽음의 장소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장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생명을 누리는 길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죽음으로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강물이 흘러 주변 전체를 변화시키듯, 공동체와 세상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 보시니 좋은 세상’, 즉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신 창조의 일성이 이뤄지는 세상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안락과 풍요가 기술 발전을 통해 곧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 앞에서, 참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 세상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의 가치를 누리는 참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섭시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형님인 태양과 누이인 달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2026. 9. 1. 내당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여름 참 유난히 더웠죠. 아직도 끝나진 않았지만,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요, 전문가들은 올 해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자조섞인 전망을 내놓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해지는 지구촌 곳곳의 자연 재해 소식은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혹독한 현실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한 현실 앞에서 교회는 우리를 초대합니다.
교회는 오늘,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을 시작으로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인 10월 4일까지 창조시기(Season of Creation)를 지냅니다. 동방 교회가 오늘을 ‘창조‘를 기념하는 기도의 날로 선포하였고, 이후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이 전통을 확대하여, 9월 1일부터 10월 4일 까지를 창조를 위한 특별한 기간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5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로 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우리 교회도 이 창조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언뜻 ’환경 보호를 강조하는 한 달‘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너머를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우리는 이 기간 무엇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기도의 날을 시작하며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Canticle of the Creatures), 우리에겐 ‘태양의 찬가‘로 더 알려진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사춘기를 막 지날 때, 성인의 그 기도를 읽었습니다. “형제인 태양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누님인 달과 별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누이인 물을 통하여 저의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는 글귀가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인의 이 기도를 그저 거룩한 젊은이가 감성에 젖어서 읉조리는 ‘감성충만’ 정도로 이해했고, 또 그것대로 감동받았습니다.
실상 그 분의 기도는 저의 ‘가벼운 읽기’와는 사뭇 다른, 세상 모든 피조물 안에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깊은 영성의 기도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그 기도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현실 앞에서 먼저드는 생각은 우리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오독하며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시니 좋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 하여라…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 28)는 축복의 말씀에, 우리가 피조물의 통치자의 지위를 인정받기라도 한 양, 세상을 우리와 피조물로 나누며 살아 왔습니다. 우리는 주인이고, 피조물은 우리의 도구에 불과하다 여기며 살아 왔습니다.
결국 피조물은 우리 욕망을 채우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욕망이 파헤치고 파괴한 자연, 하늘을 쪼개고 땅을 갈라놓을 것 같은 전쟁의 포탄과 굉음이 지배 하는 일상, 그리고 그치지 않는 자연 재해의 놀라운 소식. 여전히 제어되지 않는 우리의 탐욕이 빚어낸 이 광경들을 목도하며 우리들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바라봅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이사 2,4)는 이사야의 예언을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국가 단위의 전쟁과 무기 생산을 중단하라는 촉구를 넘어, 우리 인간이 더 이상 피조물과 나를 가르고, 그들을 우리 삶의 도구로 여기며, 지배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인식, 마음의 칼과 창을 버리라는 호소이며, 그래서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하나된 세상, ‘보시니 좋더라’ 하신 주님 말씀을 되새기라는 촉구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지배와 다스림이 아니라, 하느님의 연민으로 세상과 피조물을 바라보고,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며, 빼앗긴 낙원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시작하는 창조시기는 그저 자연을 보호하여 우리가 걱정 없는 세상을 살기 위한 캠페인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창조의 첫날로 돌아가는 일이어야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을 잠깐 돌아봅시다.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의 절망을 온 몸으로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 한 후에도 희망과 생명을 예언합니다. 그 예언은,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어떤 상황의 반전이나, 유배의 땅에서 풀려나는 눈앞의 희망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소망은 ‘생명이 하느님께로 부터 오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듣고, 그분께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처럼,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깊어져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됩니다. 힘주어 그는 말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난다.”고…. 하느님의 생명이 다다르는 곳은, 죽음 마저도 생명의 장소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죽음의 장소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장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생명을 누리는 길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죽음으로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강물이 흘러 주변 전체를 변화시키듯, 공동체와 세상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 보시니 좋은 세상’, 즉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신 창조의 일성이 이뤄지는 세상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안락과 풍요가 기술 발전을 통해 곧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 앞에서, 참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 세상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의 가치를 누리는 참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섭시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형님인 태양과 누이인 달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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