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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향한 성심의 사랑 (관덕정 후원회원 미사 강론)
  •   2026-09-07
  •   661

관덕정 후원회원 미사

 

2026. 9. 5. 관덕정순교기념관

 

사랑하는 관덕정 성지 후원회원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여러분의 얼굴에 어린 평화, 하느님 앞에서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얼굴을, 언제 어디서나 잘 지켜내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듯,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먼저 아모스 예언자의 선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당시 (상황은 예로보암 2세라는 왕이 통치하던 때로) 이스라엘은 영토는 확장되고, 외교도 안정 되었고, 무역활동이 활발한, 흔히 말해 태평성대였습니다. 백성들은 종교적으로도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큰 (베텔과 길갈) 성소를 건설하고, 하느님께 성대한 예배를 올렸죠. 자신들이 누리는 지상의 축복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너희의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들이 입술에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 끊이지 않았으나, 일상으로 들어가보면,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을 찾고, 기도는 언제나 제 삶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뿐이며,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면서도 가난한 사람, 불행에 떨어진 사람들을,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람으로 저주하며 그들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눈에, 타인의 고통과 불의에 눈 감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하느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과 꼭 같은 것으로 보였기에, ‘하느님은 그런 제사를 반기지 않으신다’ 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것은 삶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가르침이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낼 때 우리의 찬미가 완성되는 것이죠.  

 

우리도 가끔은 내가 좋은 믿음을 갖고 있는가하고 궁금할 때가 있죠. 이런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그 때 우리는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타인이 가끔은 내 삶에 걸림돌이 되고, 내가 모든 것을 차지하면 행복이 있을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하죠. 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옆에 주셨고, 아담은 ‘하와’를 만나자 웃음이 터져나오고 기쁨이 샘 솟습니다. 아담이 타자, 타인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자 그의 삶은 행복해졌다는 것. 사람은 타인을 제 삶에 받아들일 때 행복하다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 내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의 것, 나의 소유 만을 위해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라’ 고 말씀하십니다. 홀로 행복을 찾고, 홀로 고독하고, 홀로 불행으로 향하는, 자기애에 빠진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사랑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온 존재를 타인을 위해 내어놓으시는 그 분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 만을 좇는 불행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담처럼 기쁨의 웃음을 터트릴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렀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어) 소개합니다. 

미군 해군 소장이었던, Jeremiah Denton이 베트남 전쟁에서 7년간 포로로 잡혀 있었고, 그 절반을 독방에서 살았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끊임없이 고문을 당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수용 소장이 젊은 병사에게 그를 고문해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답니다. 고문이 계속되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문득,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하는 기도가 떠올랐답니다. 그 기도를 되풀이 했는데, 믿을 수 없이 평화가 담요처럼 포근하게 그를 덮어주었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평화로왔다고 합니다. 병사는 그의 얼굴을 보며, 더 이상 고문을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하는 기도를 꾸준히 바치고 있다고 합니다.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도 “예수 성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상징과 명백한 표상이 있으며 그 사랑은 우리를 다시 사랑으로 향하게합니다. 예수 성심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학교 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편리해지고, 물질적 풍요를 향해 달려가고, 가진 것이 많아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더 고독하고, 더 불행하고, 더 근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타인’을, ‘이웃’을 받아들일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사랑이 들어있지 않고 나에 대한 애착과 애정만이 들어섰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시대의 예언자는 ‘그런 제사는 하느님께서 반기지 않으신다’고 또 외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이르실 것입니다. ‘내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내 사랑 안에서 사랑을 배워, 참된 행복의 세상을 살아가라고….’

 

오늘 주님의 성심 앞에, 사랑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 봅시다. 

2026. 9. 5. 관덕정순교기념관

 

사랑하는 관덕정 성지 후원회원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여러분의 얼굴에 어린 평화, 하느님 앞에서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얼굴을, 언제 어디서나 잘 지켜내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듯,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먼저 아모스 예언자의 선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당시 (상황은 예로보암 2세라는 왕이 통치하던 때로) 이스라엘은 영토는 확장되고, 외교도 안정 되었고, 무역활동이 활발한, 흔히 말해 태평성대였습니다. 백성들은 종교적으로도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큰 (베텔과 길갈) 성소를 건설하고, 하느님께 성대한 예배를 올렸죠. 자신들이 누리는 지상의 축복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너희의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들이 입술에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 끊이지 않았으나, 일상으로 들어가보면,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을 찾고, 기도는 언제나 제 삶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뿐이며,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면서도 가난한 사람, 불행에 떨어진 사람들을,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람으로 저주하며 그들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눈에, 타인의 고통과 불의에 눈 감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하느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과 꼭 같은 것으로 보였기에, ‘하느님은 그런 제사를 반기지 않으신다’ 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것은 삶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가르침이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낼 때 우리의 찬미가 완성되는 것이죠.  

 

우리도 가끔은 내가 좋은 믿음을 갖고 있는가하고 궁금할 때가 있죠. 이런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그 때 우리는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타인이 가끔은 내 삶에 걸림돌이 되고, 내가 모든 것을 차지하면 행복이 있을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하죠. 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옆에 주셨고, 아담은 ‘하와’를 만나자 웃음이 터져나오고 기쁨이 샘 솟습니다. 아담이 타자, 타인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자 그의 삶은 행복해졌다는 것. 사람은 타인을 제 삶에 받아들일 때 행복하다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 내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의 것, 나의 소유 만을 위해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라’ 고 말씀하십니다. 홀로 행복을 찾고, 홀로 고독하고, 홀로 불행으로 향하는, 자기애에 빠진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사랑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온 존재를 타인을 위해 내어놓으시는 그 분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 만을 좇는 불행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담처럼 기쁨의 웃음을 터트릴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렀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어) 소개합니다. 

미군 해군 소장이었던, Jeremiah Denton이 베트남 전쟁에서 7년간 포로로 잡혀 있었고, 그 절반을 독방에서 살았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끊임없이 고문을 당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수용 소장이 젊은 병사에게 그를 고문해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답니다. 고문이 계속되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문득,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하는 기도가 떠올랐답니다. 그 기도를 되풀이 했는데, 믿을 수 없이 평화가 담요처럼 포근하게 그를 덮어주었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평화로왔다고 합니다. 병사는 그의 얼굴을 보며, 더 이상 고문을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하는 기도를 꾸준히 바치고 있다고 합니다.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도 “예수 성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상징과 명백한 표상이 있으며 그 사랑은 우리를 다시 사랑으로 향하게합니다. 예수 성심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학교 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편리해지고, 물질적 풍요를 향해 달려가고, 가진 것이 많아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더 고독하고, 더 불행하고, 더 근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타인’을, ‘이웃’을 받아들일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사랑이 들어있지 않고 나에 대한 애착과 애정만이 들어섰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시대의 예언자는 ‘그런 제사는 하느님께서 반기지 않으신다’고 또 외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이르실 것입니다. ‘내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내 사랑 안에서 사랑을 배워, 참된 행복의 세상을 살아가라고….’

 

오늘 주님의 성심 앞에, 사랑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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