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2018년 공동체와 구역의 날 파견 미사 강론) |
2018/10/23 18:27 |
2018년 공동체와 구역의 날 파견 미사
2018년 10월 20일 교육원 다동 대강당
찬미예수님, 2018년 공동체와 구역의 날에 함께하신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시편 133,1절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을 주제로, 오전부터 박강희 신부님의 ‘복음 이야기’ 강의, 본당 사례 발표, 토기너스의 공연에 이어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가톨릭 성가 416번 <좋기도 좋을시고>를 떠오르게 합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 한지고 형제들이 오손도손 함께 모여 사는 것.” 이 시편 133편처럼 본당 공동체 모임과 구역 공동체, 반 공동체 모임의 활성화로 본당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당의 여러 공동체들이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고 나누는 복음7단계의 방법이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한다면, ‘복음 이야기’ 방식은 복음을 이야기처럼 전체적으로 세 번 듣고 또 이야기해보면서 선포까지 가능하게 합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말씀 속에서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루카 12,8-12)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하십니다. 사실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느껴야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 압니다.’ 하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아세요?’ 제가 주일학교에서 배운 노래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었네’ 이 가사에서처럼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바로 나를 위해서 나를 구하시려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마음 깊이 개인적으로 느껴야 합니다. 혹시라도 부족하다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잘 들어주시는 기도가 바로 “하느님, 예수님, 당신을 더 깊이 체험하게 해주십시오. 당신 사랑을 더 잘 느끼게 해 주십시오.”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체험해야 사람들 앞에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체험해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인류를 또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증언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들이 박해를 받아 끌려갈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차례의 박해가 있어서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관덕정 순교 기념관에서 당시에 관아에서 사용한 형구들을 보면 순교자들이 얼마나 모질게 고문을 받았으며, 수많은 고초를 겪고 순교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더 이상 물리적인 박해는 없지만, 세속화의 물결이 신앙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 어디 계시나? 하느님 없다!’하며 자기 하고 싶은 욕망을 다 채우며 살아갈 때, 오히려 신자들은 하느님을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나는 하느님을 안다고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출발은 십자성호의 고백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만이 아니라 직장, 학교, 사회에서도 식사전후 기도 때 십자성호를 긋고 분명하게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출발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힘들고 어려운 이에게, 슬퍼하고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내가 이것을 도와야 하겠구나, 내가 이것을 나눠야 하겠구나.’ 생각이 난다면, 어쩌면 이것은 성령의 인도로 애덕을 실천하며 주님의 현존을 증명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웃에게 미소와 친절과 선행과 애덕실천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을 다함께 증언하고 선포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