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청년청소년국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
2024/09/03 17:15 |
청년청소년국 사제피정 파견미사
2024년 8월 30일, 연화리 피정의 집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비유로,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매일미사에 안소근 수녀님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해설을 소개하였는데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이기 때문에, 잠든 열 명의 처녀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고, 등잔의 기름은 선행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선을 베풀지 않았기에 등잔에 선행의 기름이 없었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선을 베풀어서 선행의 기름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름을 나누어주는 것도 상인들에게 기름을 사러가는 것도 종말의 때에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줍니다. 마무리에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에, 깨어있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때를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 그때그때 선행의 기름을 채워야 한다고 들립니다. ‘자선과 선행, 천천히 하자. 다음에 하자’가 아니라 지금 기회가 있을 때 하라는 것이지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오늘날 교회의 시급한 과제로 시노달리타스, 시노드 정신의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연초에는 본당 단위에서도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도록 독려하고자, 로마에서 <본당신부들의 시노드>를 개최하였고, 다음 주에는 주교회의 주관으로, 한국판 <본당신부들의 시노드>를 왜관 성베네딕도문화영성센터에서 개최한다고 들었습니다.
시노드 정신의 핵심은 사제가 성직주의에 빠져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또한 백성이 원하는 것만 찾아가는 포퓰리즘에도 빠지지 않도록, 구성원 전체가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성령께서 그 공동체에 말씀하시는 것을 함께 경청하고 방향을 식별한다는 것입니다. 시노드라는 말 자체가 쉰(함께) + 호도스(길)이기에, 시노드 정신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방향으로 함께 가겠다는 정신입니다.
최근 교구 청년청소년국 주관으로 잘츠부르크 청년교류단의 대구 방문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로 지난번 대구 방문에는 교구청 사제 수도자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자원봉사자들이 그냥 진행을 하였다면, 이번에는 청년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방문단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으며, 또 잘츠부르크 청년들이 한국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요청도 반영하는 등,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청년의 눈높이에서 잘 마련하고 진행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배려하고 마련한 프로그램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독려하고 계시는 시노달리타스,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이 되며, 청년청소년국 신부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수고에 대한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 제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하는데요.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에겐 걸림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겐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혜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가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우리 사제들은, 이 세상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선과 선행의 기름을 등잔에 채워야 할 것입니다. 사목에서 자선과 선행은, 어쩌면 성직주의와 포퓰리즘을 둘 다 회피하고서, 신자들과 함께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천상 행복을 향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뒤따라,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초대하고 보살피는, 착한 목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