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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장례미사 강론)
   2021/03/18  11:53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장례미사

 

2021. 03. 17.(수) 10:30 범어대성당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께서 지난 주일(3월 14일) 새벽 1시 20분에 선종하셨습니다. 바로 그 전날 저녁 7시 반에 장신호 주교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마지막 병자성사를 드리고 임종을 돕는 기도를 바쳤었는데, 몇 시간 후에 조용히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이 대주교님의 시 중에 ‘고독한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누가 오기만 기다려지는 저녁

자꾸 누가 오는 것만 같은 것은

차라리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먼 산은 말이 없는데

오히려 올 이는 벌써 왔는지도 모른다.

 

보지 못하여 누구인지 모르고

찾아가지 못하여 기다리는, 그러나

분명 있기에 기다리는,

그리고 만나야 하기에 찾는

내 영혼의 임자여.(후략)

 

이 대주교님께서는 그 임자를 만나기 위해 주일 새벽에, 마치 막달라마리아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새벽 일찍 떠났듯이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1972년 11월 30일에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역대 한국인 성직자로서 최연소로 주교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5년에 승계권을 가진 대주교로 임명되셨고, 그 이듬 해 7월 5일에 교구장으로 착좌하셨습니다.

사목표어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전임 교구장이셨던 서정길 요한 대주교님의 사목표어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며’였는데, 그 뜻과 기조를 이어가며 교회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2007년 4월에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셨습니다.

2007년 은퇴하실 당시, 사실 대주교님께서는 만 75세 정년을 맞기까지 3년을 앞당겨서 교황님께 은퇴 신청을 하셨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렇게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후임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임 대주교님을 먼저 떠나보내는 안타까움과 아픔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보좌주교로 14년, 그리고 교구장으로 21년을 재임하시면서 하신 일과 이루신 업적이 하도 많고 크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대주교님의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은퇴하신 다음 해 1월에 식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 후에 음식 섭취가 어려워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수술까지 받으셨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서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 후 지난 10여 년간 암 수술 후의 후유증을 잘 이겨내셨고 건강을 잘 유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3년 전부터 쇠약해지는 모습이 역력해지시더니 지난 8월부터는 본격적인 병원생활을 하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가실 준비를 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내년이 주교서품 50주년인데, 1년 남짓 남기고 떠나시니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은퇴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과 고심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 은퇴하시고 그 다음 해 11월 30일 당신 주교 성성일에 ‘저녁노을에 햇빛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이 책은 자서전 같은 수상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책 124쪽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냥 한 성직자로, 한 사람의 주교로 살면 좋겠는데 아마 이제부터는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은퇴하고 1년이 지났으니, 그리고 사경을 헤매다가 다시 살게 되었으니 좀 바뀔 수가 있지 않겠는가? 소박한 초심으로 돌아가서 살면 될 것이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주교가 되었다. 자줏빛 옷을 입는다. 좀 다른 사람이다. 표가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표가 날 것인가? 나는 바라건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항상 나는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으로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대주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은퇴 후에도 실제로 그렇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2009년에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실시했던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두 달 가량 받으셨고 의료원장이 발행하는 수료증을 받았으며 호스피스 병동을 몇 번 방문하여 환자들을 위로하곤 하셨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대주교님께서 집안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아 교구에 기증하신 빌딩에 ‘앞산 밑 북카페’를 열어 문화를 통한 복음화를 이루고자 노력하셨던 일입니다. 이 일은 작년 초까지 지속되었는데 작년 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저녁노을에 햇빛이’라는 책 1권에서 이 대주교님께서는 당신을 ‘매혹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분은 ‘루르드의 성모님’이십니다. 루르드의 성모님은 우리 교구의 주보이시기도 합니다만, 이 대주교님을 매혹시킨 첫 번째 분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유럽에 가실 일이 있으면 꼭 루르드에 들려서 교구를 위해 기도하시고 침수까지 하시고 오셨습니다.

대주교님의 부친 한솔 선생님께서 1962년에 번역하신 책 ‘벨라뎃다의 노래’를 당신이 은퇴하신 해에 다시 출판하여 신자들에게 보급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녁노을에 햇빛이’라는 책 130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루르드 성모 발현 150주년이다. 그래서 한국 신자들이 많이 오는 5월과 7,8월에 고해신부로 봉사하고 싶었는데 이제 갈 수가 없다.”

대신에 당시 보좌주교였던 제가 그 해 2008년 끝자락에 교구 순례단을 데리고 루르드를 방문하여 우리 교구와 두 분의 대주교님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왔던 일이 있습니다.

이 대주교님을 매혹시킨 두 번째 분은 ‘나가사키의 순교자들과 그 후예들’입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여러 차례 신자들을 모집하여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가셨고 순례코스를 개발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순례 시에 직접 설명도 하시고 묵상자료를 읽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후예들’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좋아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 부인이 그 자리에서 죽고 자신도 몇 년 후에 세상을 떠납니다만, 전쟁 후 세계에 던진 평화의 메시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그 반대의 길을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주교님께서는 ‘사랑으로 부르는 평화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전기를 쓰셨고, ‘한국 여기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회지 ‘여기애인’을 발행하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대주교님께서 좋아하시는 분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과 준델 신부님,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특히 대주교님께서 ‘한국 떼이야르 연구회’를 만드셨고, 떼이야르 사상에 대한 연구 발표와 번역작업을 꾸준히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주교님을 매혹시킨 사람은 이윤일 요한 성인과 대구의 순교자들이십니다. 대주교님께서는 병인박해 때 대구 관덕정에서 돌아가신, 유일한 성인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1986년 12월 20일에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의 순교자 묘역에서 모시고 와서 대구 성모당 제대 밑에 안치하시고 교구 제2주보로 선포하셨습니다. 그 후 4년 뒤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을 완공하신 후 기념관 경당 제대 밑에 모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칠곡 동명 한티의 무명 순교자 묘들을 발굴해내시고 오늘의 한티성지로 개발하셨고, 경주 산내의 진목정 성지를 개발하시는 데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이 대주교님은 순교자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구 초대주교님이신 드망즈 주교님께서 1919년에 계산성당을 증축하실 때 큰 희사를 하셨던 분 중에 ‘한윤화’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부인이 복자 김종륜 루카의 종손녀인 김명산 로사이십니다. 이 대주교님의 모친 한덕희 여사가 바로 그분들의 따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이 대주교님께서는 은퇴 후에 진목정 성지 입구 ‘소태골’이라는 마을에 집을 하나 구입하여 지난 몇 년 동안 건강하실 때 가끔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지내다 오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 바울로 대주교님께서는 교구장으로 재임하실 때나 퇴임을 하신 후나 한결같이 당신을 매혹시킨 분들의 삶과 정신을 쫓아 살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 5장 산상설교에 나오는 ‘참된 행복’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일명 ‘진복팔단’이라고도 하는 이 구절은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과 그 다음 날 ‘위령의 날’에도 늘 봉독되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 산상수훈은 산 이나 죽은 이나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말씀이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실제 참된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주님의 엄중한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구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12)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그 참된 행복을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는 퇴임 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리고 2014년에 유언장을 쓰셔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선종하신 날 대주교님의 유언장을 개봉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쓰신 2014년 5월 2일자 유언장 내용을 지난 월요일에 언론에 공개하였습니다. 그 유언장 마지막 단락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 자비를 간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땅의 교회가 잘 되도록 사랑의 힘을 더 키워가도록 힘써 주십시오.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믿고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 우리들에게 큰 모범을 보여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안히 하느님 나라로 떠나십시오. 저희들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희들도 그곳에서 대주교님을 기쁘게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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