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소식
Archdiocese of Daegu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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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이 땅의 하느님 나라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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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사목부(부장 : 성용규 도미니코 신부)는 매월 첫째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교구청 본관 2층 대강의실에서 ‘이 땅의 하느님 나라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강좌에는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5월에는 ‘인간의 존엄성’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됐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야 하고,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을 받아야 하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통을 겪을 경우에는 국가와 사회가 돌보아야 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 국가 체제가 인간을 책임을 지려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어디 있는가?
창세기 1장, 2장에 인간 존엄성의 결정적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우리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는 곳에서 인간 존엄성을 발견한다. 둘째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이 돌보도록 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만드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흙으로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 넣으신다. 이렇게 성경은 인간 창조 때부터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지성적, 감성적, 의지적으로 창조하셨다. 창조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지성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지 볼 수 있다. 창조 질서는 지성의 하느님을 깨닫게 한다. 인간도 지성으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세상을 돌보아야 한다. 또 하느님은 감성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매번 하느님은 "보시니 좋았다."라고 감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셨다. 창조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인간들이 돌보며, 누리며 살 것을 생각하시며 하느님은 감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섭리로 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며 인간에게 당신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나누어 주신다. 여기서 창조에서 하느님 의지를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돌볼 사명을 주시고 이를 위해 당신의 지성, 감성, 의지를 나누어 주셨다. 당신이 창조하실 때의 그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것을 돌보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하느님의 모습, 창조 때의 하느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이 만든 세상을 인간이 돌보도록 인간을 하느님과 닮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 살수록 알게 되는 것이 내 생각, 내 느낌, 내 의지가 하느님과는 반대로 악을 향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이 은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모색하고, 감성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감정적 영역으로 치달아가고, 의지가 하느님을 거슬러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행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지성, 감성, 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둠의 고통과 체험을 통해서 자유와 빛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어둠과 고통을 통해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를 "회심"이라 한다. 그런데 하느님과 더 멀어지는 쪽으로 지성, 감성, 의지를 사용하며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길을 계속 가려는 사람들도 많다. 내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끝까지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조차도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어둠의 체험, 악의 체험, 그 지긋지긋함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어둠과 악 속에서 헤메다가 결국 삶을 끝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인간은 어둠의 체험 속에서 빛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악의 체험을 통해서 선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내 중심적, 이기적인 삶의 고통 속에서 방향을 돌이키는 것, 하느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회심이고, 회심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이러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게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 어둠을 빠져나와 하느님께 섭리 속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받았다. 이것이 다른 생명과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이다.
나의 고유성 존엄함의 근거이다.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고유성과 유일성이 나의 존엄함의 또 다른 근거이다. 나라는 존재는 유일하다. 오직 하나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고, 창조의 이유이다.” 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사목부(부장 : 성용규 도미니코 신부)는 매월 첫째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교구청 본관 2층 대강의실에서 ‘이 땅의 하느님 나라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강좌에는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5월에는 ‘인간의 존엄성’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됐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야 하고,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을 받아야 하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통을 겪을 경우에는 국가와 사회가 돌보아야 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 국가 체제가 인간을 책임을 지려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어디 있는가?
창세기 1장, 2장에 인간 존엄성의 결정적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우리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는 곳에서 인간 존엄성을 발견한다. 둘째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이 돌보도록 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만드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흙으로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 넣으신다. 이렇게 성경은 인간 창조 때부터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지성적, 감성적, 의지적으로 창조하셨다. 창조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지성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지 볼 수 있다. 창조 질서는 지성의 하느님을 깨닫게 한다. 인간도 지성으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세상을 돌보아야 한다. 또 하느님은 감성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매번 하느님은 "보시니 좋았다."라고 감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셨다. 창조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인간들이 돌보며, 누리며 살 것을 생각하시며 하느님은 감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섭리로 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며 인간에게 당신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나누어 주신다. 여기서 창조에서 하느님 의지를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돌볼 사명을 주시고 이를 위해 당신의 지성, 감성, 의지를 나누어 주셨다. 당신이 창조하실 때의 그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것을 돌보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하느님의 모습, 창조 때의 하느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이 만든 세상을 인간이 돌보도록 인간을 하느님과 닮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 살수록 알게 되는 것이 내 생각, 내 느낌, 내 의지가 하느님과는 반대로 악을 향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이 은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모색하고, 감성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감정적 영역으로 치달아가고, 의지가 하느님을 거슬러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행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지성, 감성, 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둠의 고통과 체험을 통해서 자유와 빛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어둠과 고통을 통해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를 "회심"이라 한다. 그런데 하느님과 더 멀어지는 쪽으로 지성, 감성, 의지를 사용하며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길을 계속 가려는 사람들도 많다. 내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끝까지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조차도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어둠의 체험, 악의 체험, 그 지긋지긋함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어둠과 악 속에서 헤메다가 결국 삶을 끝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인간은 어둠의 체험 속에서 빛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악의 체험을 통해서 선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내 중심적, 이기적인 삶의 고통 속에서 방향을 돌이키는 것, 하느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회심이고, 회심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이러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게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 어둠을 빠져나와 하느님께 섭리 속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받았다. 이것이 다른 생명과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이다.
나의 고유성 존엄함의 근거이다.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고유성과 유일성이 나의 존엄함의 또 다른 근거이다. 나라는 존재는 유일하다. 오직 하나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고, 창조의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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