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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성명서
   2023/09/13  9:55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성명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으로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 운동가, 그리고 조선인으로 오인된 일본인 등이 일본 군대와 경찰, 민중들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특히 조선인과 중국인 희생자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이름과 인원수 등의 실태를 조사 중이라고 대답만 한 채 이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당시 정부와 군, 경찰 등이 주도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실 인정과 그 이후 조사, 그리고 당시 대응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 등이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답변이 어렵다, 진상 조사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해 온 각지의 적지 않은 양심적인 시민과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학살의 실태에 관한 기록이 축적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정부와 군대, 경찰 등에서 퍼뜨린 허위 정보로 자경단 등이 학살에 가담하였고, 나아가 사건 은폐에도 일본 정부가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식민지화된 한반도에서 수없이 많은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끝에 일본에 온 사람들이 갑자기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에게 둘러싸여 무참히 목숨을 빼앗긴 것의 억울함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현재 많은 나라에서 과거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의 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며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부당한 역사적 사실과 그 피해자를 마주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캐나다 방문 중이시던 2022년 7월 25일, 원주민 자녀들을 부모에게서 떼어 놓고 기숙학교에서의 학대를 포함한 동화 정책에 가톨릭 교회가 관여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셨습니다. 

 

조선인 학살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와 이에 대한 조선 민중의 저항, 그리고 ‘불령선인’(不逞鮮人) 탄압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을 향한 이유 없는 차별 감정이 생겨났고, 현재도 조선 학교에 대한 공공 기관의 차별과 사회에서의 배타적 언행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차별과 배타적 감정이 오늘날 재일 외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을 조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연합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22년 11월 3일, 일본 정부가 증오 범죄(차별에 의해 야기되는 범죄)를 명확하게 범죄로 규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그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우려하며, 증오 범죄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아울러 포괄적인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한 증오 범죄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주교위원회는 지진 100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양성 속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도록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할 것을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 책임의 진상 규명, 희생자 유족에 대한 사죄와 보상, 자료 공개와 영구 보존, 그리고 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역사 교육의 확대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매년 도쿄도 스미다구에서 열리고 있는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 발송을 재개하고 추도식을 지원할 것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 사회주교위원회는, 가톨릭 교회 신자 여러분, 일본의 모든 시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관동 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입니다. 왜 그러한 학살이 일어났을까요? 외국인 차별은 왜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는 일본에 있는 외국 국적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잘못한 게 있다면, 그 깨달음과 회심의 은총, 그리고 인도하심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
가쓰야 다이지 주교(위원장)
나루이 다이스케 주교(부위원장)
나카무라 미치아키 대주교
마쓰우라 고로 주교
웨인 번트 주교
아먀노우치 미치아키 주교
에드가르 가쿠탄 주교
모리야마 신조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