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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하신 하느님께 더욱 더 의탁합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 사제총회 미사 강론)
   2021/11/11  11:43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 사제총회 미사

 

2021. 11. 09. 범어대성당

 

우리 교구는 사제총회를 통상 11월 첫째 화요일에 개최하였습니다만, 지난 화요일이 ‘위령의 날’이라서 1주일 미루어 오늘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제총회에 앞서 성직자묘지에서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모든 분들, 특히 선종하신 신부님들을 기억하고 기도드리는 위령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대유행으로 인해 위령미사를 성직자묘지에서 드리지 못하고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곳 범어대성당에서 사제들만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이어서 총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이라 장례미사 외의 다른 미사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지향으로만 돌아가신 신부님들을 기억하고 축일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최시동 신부님, 최봉도 신부님, 이수승 신부님, 그리고 황용식 신부님이 돌아가셨는데, 올해는 다섯 분이나 돌아가셨습니다. 2월에 장명훈 신부님, 3월에 이문희 대주교님, 8월에 이용길 신부님,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이대길 신부님과 이성우 신부님께서 하느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저에게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주신 신부님은 이상호 베드로 신부님이신데, 올해로 선종 10주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모셨던 신부님은 신상조 신부님과 이대길 신부님과 이성우 신부님이신데 이제 모든 분들이 하느님 곁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또 속절없이 흘러가는가 봅니다. 어제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이 구절이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 89,10)

이 시편 구절은 우리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면서 영원하신 하느님께 더욱 더 의탁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들이 돌아가시면 저와 총대리 주교님과 사무처장 신부님과 관리국장 신부님이 참석한 자리에서 유언서를 개봉하고 읽게 됩니다. 지난 3월에 돌아가신 이대주교님과 최근에 돌아가신 세 분의 신부님들의 유언서는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놀라웠고 내용도 감동스러웠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선종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더욱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입니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의 라테란 언덕에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만, 단순히 그 의미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지역 교회가 로마의 어머니이신 이 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뜻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보편교회든, 지역교회든, 개별교회든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혹은 내부로부터 비판을 받아오고 있고 쇄신의 요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비판을 들으면 어떤 때는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고 의기소침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당한 비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못내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떤 비판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2,13-22)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다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도 그 당시 기성 교회에 대한 비판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사가는 성전정화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성전의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예언한 것처럼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듯이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과 성사로 오늘날 교회인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현존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 하느님의 위로의 손길로 따뜻이 맞아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파에 지친 영혼들이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에 와서 실망하는 사람,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 사람 전교하기도 정말 쉽지 않은데,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신자들과의 인간관계 때문에 실망하여,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의 바람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냉담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책임을 하느님께서 나중에 물으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성전이라면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들도 성전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작은 성전인 우리들이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알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모신 성전이며 누군가의 성전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