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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뜻을 찾고 실천한다면 (수험생을 위한 기원미사 강론)
   2021/11/16  15:19

수험생을 위한 기원미사

 

2021. 11. 16. 성모당

 

오늘 우리는 대입수능시험을 이틀 앞두고 ‘수험생을 위한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대입수능시험을 앞둔 모든 수험생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드립니다.

오늘 이 미사에 강은희 글라라 대구시 교육감님과 여러 선생님들도 함께 하셨는데 기쁘게 환영하며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미사에 오신 학부모 여러분들과 그 자녀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요즘은 대학입시가 수시가 많고 정시가 적기 때문에 수능시험의 무게가 예전보다 덜 합니다만,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수능시험이 수험생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에 수능일이 가까이 오면 온 나라가 긴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는 수능 문제지가 상엄한 경비를 받으며 전국으로 배달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만 수능일에는 수험생들에게 방해를 줄까봐 비행기 뜨는 것도 자제를 해야 하고, 경찰 오토바이들은 지각한 수험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능’이란 것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학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을 말합니다. 1년에 단 한 번 치러지는 그 수능 시험의 점수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못 들어가든지 결정되기 때문에 수능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옛날에 저희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는 ‘예비고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비고사는 대학 본고사를 치기 전에 치는 시험인데 예비고사에 합격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고사는 점수는 별 의미가 없고 합격과 불합격만 중요했던 것입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그동안 수많은 변천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 온 것이 교육정책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도 우리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기에 적응해야 하니까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한 30여 년 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영화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현실은 사람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가 치열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삶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입시와 치열한 삶의 경쟁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한 면도 있지만 그 경쟁 때문에 쳐지고 탈락하고 학교 밖에서 헤매는 청소년들도 참으로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치열한 입시경쟁 때문에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차라리 유학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8년 전에 캐나다 캘거리에서 북미사제모임이 있어서 갔다가 벤쿠버에 사는 조카 집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제 조카는 입시경쟁 때문에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 한 25년 전 우리나라에 IMF가 닥치기 바로 전에 부인과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공부를 더 해야 하겠다고 캐나다로 건너갔던 것입니다. 조카는 그곳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따서 지금까지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만, 제가 8년 전에 갔을 때는 고등학교 다니는 큰 딸, 중학교 다니는 작은 딸,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아들, 그렇게 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개인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또한 개인 컴퓨터, 즉 PC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저는 놀랐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주로 책을 보든지 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고, 어느 아이가 외출을 해야 할 때만 휴대폰을 줘서 엄마와 연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방이 따로 있어서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써야 하는 아이가 사용시간을 정하여 그 시간만 사용하였고, 그 컴퓨터 방은 유리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거실에서 안이 보이는 방이었습니다.

그 집 아이들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하고는 참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말합니다. ‘워라벨’은 모든 직장인들이 원하는 생활입니다. 요즘은 ‘스라벨’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스라벨’은 ‘Study and Life Balance’의 줄인 말로 공부와 생활의 균형을 말하는 신조어입니다. ‘스라벨’은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성세대가 학생들에게 ‘스라벨’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6,31-34)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31)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뜻을 먼저 찾고 실천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곁들여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믿음과 실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필립 4,6-9)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립 4,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