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하는 일을 위해 축성되어 봉헌한 삶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종신서원미사 강론) |
2020/02/10 17:53 |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종신서원미사
2020. 02. 10.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오늘 종신서원 하시는 세 분의 수녀님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지난 1월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이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입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주보성인이신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사부이신 베네딕도 성인께서 오늘 종신토록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위하여 특별히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주시기를 빕니다.
베네딕도 성인과 스콜라스티카 성녀께서는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에나 그동안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고 또 몸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제 이 분들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위하여 두 분의 성인들께서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종신서원 예식 중에 원장 수녀님께서 종신서원을 청하는 수녀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수녀님들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안에서 살면서,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수녀님들은 “예, 원합니다.”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수도자들이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산다고 하여 수도생활을 한편으로는 ‘봉헌생활’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봉헌생활’이란 용어를 ‘축성생활’이라는 말로 변경하기로 한국 주교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라틴어 ‘Vita consecrata’ 라는 말을 지금까지 ‘봉헌생활’이란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여 왔는데, 전국남녀수도장상연합회에서 이 말의 정확한 번역이 ‘봉헌생활’보다는 ‘축성생활’로 해야 맞는다고 하면서 용어를 변경하여 줄 것을 주교회의에 건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교회의 총회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논의를 하였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가 지난 12월에 있었던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 건의를 받아들여 ‘봉헌생활’이란 말을 ‘축성생활’이란 용어로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축성(祝聖)’, 즉 ‘Consecratio’라는 말은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의 일에 쓰기위해 성별(聖別)하여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축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쓰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세상 사람들 속에서 뽑아 거룩하게 하시는 데에 강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도권을 인간의 의지보다는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할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축성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사랑의 응답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한 사람으로서 성령으로 축성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데에 써져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일에만 써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루카 10, 38-42)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려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오셨으니까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는데,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부엌일을 돕지 않는다고 언니 마르타가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 41-42)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이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삶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머지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의 말처럼 우리 수녀님들은 그 필요한 그 한 가지를 찾아내셨습니까?
여기 행정 동이 ‘사수동’이지요?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수死守한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말입니다. 우리 수녀님들은 무엇에 목숨을 겁니까?
이해인 수녀님의 어느 시 중에 “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 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 여인이 누굽니까? 물론 수녀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이 수녀님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필요한 것 한 가지’는 바로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일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결과 가난과 순명인 것입니다. 우리 앞의 많은 성인 성녀들도 삶에서 가장 필요한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기꺼이 복음삼덕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4세기의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께서는 동정을 지키는 수도생활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 신자의 표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종신서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성탄 때 KBS TV에서 경북 상주에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생활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는 요즘 같이 세상이 참으로 이상하게 변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대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혼란스럽고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세상 안에서 수도자로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수녀님들도 필요한 그 한 가지를 붙드시고 성령으로 축성되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삶을 기쁘게 삶으로써 참된 삶과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