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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백꽃은 두 번 핀다 (위령의 날 미사 강론)
   2023/11/03  16:23

위령의 날 미사

 

2023. 11. 02. 남산동 성직자 묘지

 

어제는 ‘모든 성인 대축일’이었고,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위령의 날’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죽은 모든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난해에는 세 분의 신부님들(구본식 안드레아, 유승열 바르톨로메오, 정순재 베드로)께서 돌아가셨는데, 올해는 지난 여름에 김용길 바오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10년 전부터 돌아가시는 신부님들을 군위묘원에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도 군위묘원에 묻히셨습니다. 그래서 이곳 교구청 성직자묘지에 오시는 신자분들이 이곳에 묻히신 성직자만이 아니라 군위에 묻히신 대주교님과 신부님들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이곳 담벽에 그분들의 명패를 새겨넣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위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앞서 세상을 떠나신 성직자들,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품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열심히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이태원 참사 1주기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그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사망자만 해도 1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21세기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문제들이 하루빨리 잘 해결되고 전쟁이 멈추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일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바칩니다. 사도신경의 후반부가 이렇지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 1006항에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우리는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천국의 성인들은 지상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공로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위령의 날과 위령성월에는 특별히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무엇이지요? ‘동백(冬栢)’입니다. 동백이란 말 그대로 ‘겨울나무’라는 뜻입니다. 대체로 11월 말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2월에 절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동백꽃이 두 번 핀다고 합니다.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땅에서 한 번 피는 것입니다. 보셨지요?

이곳 성직자묘지에서 성모당으로 가는 길에 동백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사철 푸르고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벌써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좀 더 추워지면 꽃이 필 것입니다. 그런데 동백은 꽃이 질 때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통째로 땅에 떨어집니다. 이렇게 동백나무는 꽃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꽃을 버림으로써 땅에서 또 한 번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늙어감을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한 보름 전에 ‘교구 시니어 합창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조현권 사무처장 신부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니어는 영원의 시간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시기이다.” 참 멋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신학교 느티나무 밑에 돌의자가 두 개 있는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나태주 시인의 ‘11월’이라는 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