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가 계속해서 갚아야 할 사랑의 빚 (연중 제23주일 미사 강론) |
2020/09/05 15:12 |
연중 제23주일
2020. 09. 06. 주교좌 계산성당
찬미예수님.
9월 ‘순교자 성월’ 첫 주일부터 이렇게 온라인으로 미사를 드리며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지난달 중순부터 수도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가 다시 크게 번지기 시작하더니 각 지방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대구 경북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동안 방역을 잘 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수도권 발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대구광역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강화에 따른 행정명령’ 고시를 발표하였고, 교구는 이에 협조하기 위해 9월 10일까지 평일미사뿐만 아니라 이번 주일미사까지 중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당국의 방침에 따르는 것을 넘어 우리 교우들과 이웃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말부터 두 달여 동안 코로나19가 대구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우리 지역에 대유행을 하였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기에 지난 5월 초에 어렵게 시작하였던 미사를 또 다시 중단하는 조치를 내리게 된 점에 대하여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사를 중지하는 일이 이번에는 오래 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이 코로나19가 쉽게 물러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가 방역을 잘 지킨다면 최소한의 귀중한 신앙생활과 일상은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라. 코로나 이전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코로나19의 재확산의 원인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걱정하고 사회를 선도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19의 확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커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하여튼 2020년 올해의 주인공은 단연 코로나19입니다. 그동안 대형 산불과 최장 기간의 장마와 태풍도 있었지만 코로나19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놈은 2019년 말에 처음 나타났지만 2020년 올 한 해 내내 온 세상을 쥐어흔들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그 미물 앞에 인간이 이렇게도 초라해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안전하며 부족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악역 중에도 악역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계까지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 번 감염이 되면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확진자라는 낙인이 찍혀 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열이 넘쳐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간에, 그리고 집단 간에 갈등과 분열이 더 생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기를 그냥 방치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사랑 실천으로 서로를 치유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했듯이 인간은 본성상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한 동네를 이루며 한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 사람도 같은 얼굴이 없듯이 생각도 취향도 기질도 다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교훈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인 에제키엘서 33,7-9에서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한 사람의 악인이라도 구하려는 노력과 책임을 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2독서인 로마서 13,8-10에서는 바오로 사도께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사랑의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인 마태오 18,15-20에서는 예수님께서 죄를 지은 형제에 대하여 충고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의 기도에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잘못을 한 형제에게 충고를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상대가 마음을 닫고 있거나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도 바르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충고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오늘 성경말씀은 죄인 한 사람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대화를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듯이 자기 말만 하지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소통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말이 ‘옳은가, 그른가?’보다는 상대가 어느 편이냐, 어느 진영이냐가 더 중요시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진영을 떠나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충고까지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 안에도 온갖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다들 부족한 가운데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죄인들의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교회가 세상 공동체보다 나은 것은 다들 부족한 이들이지만, 하느님 말씀을 목말라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갈구하면서 하느님의 계명을 나름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사랑의 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는 말씀인데, 이는 달리 말하면 사랑의 빚은 우리가 계속해서 갚아야 하는 빚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좋은 빚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교회가 조건 없는 사랑 실천으로 이 세상에 ‘치유의 공간’이 되고 ‘야전병원’이 되어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참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