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끝까지 사랑하는 것 (주님 만찬 저녁미사 강론) |
2015/04/03 14:4 |
주님 만찬 저녁미사
2015. 04. 02. 성목요일, 대신학교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합니다. 일 년 중에서 가장 거룩한 주간이 ‘성주간’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삼일이 ‘성삼일’입니다. 이 성삼일 동안에 우리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구세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삼일 중에서 첫 날인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즉 성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성부께 봉헌하시고 우리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성목요일이 아니라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마지막 떠나시면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증표를 남기셨습니다. 그냥 기념으로 무엇을 남기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들의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 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 영혼이 살찌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살과 피를 남에게 먹으라고 양식으로 내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실제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최후만찬 때 말로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날인 성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실제로 바치셨고 당신의 피를 우리를 위해 실제로 다 흘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성체 할 때마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냥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느님이십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보시지!’ 하는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려오시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하느님, 그런 분을 우리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그들에게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즉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과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것, 그리고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은 떨어질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형제끼리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과 성찬례는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의미 자체가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그런 단순한 성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쪼개고 나누어서 모든 사람의 양식으로 내놓는 사랑의 성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성유축성미사 강론 때 교황님 말씀을 다 전해드리지 못 했습니다만, 이번 교황님 알현 때 교황님께서 사제들을 위해 하신 말씀 중에 사제양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미 다른 자리에서도 교황님께서 몇 번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것은 사제 양성의 네 가지 측면에 대한 것입니다. 즉 영성적인 면, 지성적인 면, 공동체적인 면, 그리고 사도직적인 면입니다. 사제 양성에 있어서 이 네 가지 측면을 이야기하시면서 특히 공동체적인 면과 사도직의 활동을 강조하셨습니다. 영성과 지성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오늘날 신학생들은 특히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과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일,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봉사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제, 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열려있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너와 나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늘 복음(요한 13,1-15)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고 하자 베드로가 말립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공동번역에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그러면 주님, 제 발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사랑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줌으로써 서로 상관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4-15)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난 뒤, 성 밖의 올리브 동산으로 올라가시어 밤늦도록 기도하십니다.
몇몇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모두 잠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단 한 시간이라고 나와 같이 깨어 있을 수 없는가?”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다를 앞세운 병사들이 들이닥쳐서 예수님을 잡아갑니다.
이상이 성목요일 저녁과 밤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심문 받으십니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는 빌라도한테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에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작가는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사랑은 모름지기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활의 빛이 밝아올 그날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거룩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