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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죄인입니다 (대신학원 주님수난성지주일미사 강론)
   2022/04/11  12:4

주님수난성지주일미사

 

2022. 04. 10. 대신학교

 

오늘 우리는 ‘주님수난성지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미사 전에 우리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과 입당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수난성지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 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비롯한 온갖 질병과 가난과 폭력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주님수난성지주일’을 지낼 때마다 저는 인간의 양면성과 악의 평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옷을 벗어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그렇게 환영하던 무리들이 이제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소리 질러대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변덕스럽습니다. 그리고 참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구미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선동과 선전에 대중은 곧잘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루카가 전한 주님의 수난기’를 들었습니다만, 4복음서가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저녁에 12사도들과 함께 어느 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시고 당신 몸과 피를 담아 주시는데, 사도들은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라는 문제로 말다툼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올리브산으로 가시어 피땀을 흘리시며 성부께 기도드리고 계시는데, 따라갔던 제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자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유다는 병사들을 데리고 나타나 태연하게 예수님께 입맞춤을 하고 팔아넘깁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대사제 집에 끌려가서 온갖 심문과 조롱과 매질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제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달아난 것입니다. 단지 베드로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잔뜩 겁을 먹은 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유다는 그렇다 치고, 수제자인 베드로가 어떻게 그렇게 배반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이, 더 나아가 유다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이고 인간의 모습이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 안에 있는 이중성, 양면성을 인정하고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로마 7,15.19.24)

이게 인간입니다.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나아질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총과 자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전쟁 범죄자들의 재판을 보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내전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지만 스스로 말하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하느님도 어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4복음서들은 모두 베드로의 배반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루카가 전한 수난기’에 의하면, 베드로는 세 번째 배반하는 말을 하자마자 닭이 울었고, 주님께서는 몸을 돌려 그런 베드로를 바라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분명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계획적이었지만 베드로의 배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보통 의심을 받게 되면 즉시 그 자리를 피해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걱정되어서였을 것입니다. 자신도 붙잡혀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겁이 나서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그 마음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주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밖에 나가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잘못 할 수 있습니다. 배반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이고, 부활의 길이며 파스카의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