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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 어디로 가는가? (한티순교성지 도보순례 파견미사 강론)
   2022/09/27  15:41

한티순교성지 도보순례 파견미사

 

2022. 09. 24.

 

코로나19 때문에 교구 주최 도보성지순례를 이곳 한티에서 3년 만에 갖게 된 것 같습니다. 3년 전에는 경주 산내 진목정 성지에서 도보순례를 했었는데 그날 비가 엄청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날 미사 때도 비가 왔었는데 영성체 때 비가 개여 미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도보성지순례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도보성지순례를 하면 좋은 것이 참 많습니다. 첫째, 순교자들의 신앙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영적으로 풍성해 지니까 좋고, 둘째,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걸을 수 있어 건강해 지니까 좋고, 셋째, 다른 교우들과 친교를 나눌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그렇지요?

 

오늘 우리들은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출발하여 한티순교성지까지 ‘한티 가는 길’ 마지막 구간을 걸었습니다. 가실성당에서 시작하여 신나무골 성지를 거쳐 한티까지 오는 ‘한티 가는 길’ 45.6Km를 지난 2016년 9월 10일에 경상북도와 칠곡군의 도움으로 개통을 하였습니다.

‘한티 가는 길’은 다섯 개 구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구간은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성지까지 ‘돌아보는 길’이며, 제2구간은 신나무골성지에서 창평지까지 ‘비우는 길’입니다. 그리고 제3구간은 창평지에서 동명성당까지 ‘뉘우치는 길’이며, 제4구간은 동명성당에서 가산산성 진남문까지 ‘용서의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들이 걸었던 제5구간은 진남문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사랑의 길’인 것입니다.

‘한티 가는 길’의 주제어가 무엇입니까? “그대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이 문구가 리본이나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한티 가는 길이 단순히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며, 용서하고, 사랑하며 걷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티 가는 길 45.6Km를 완주하려면 통상 2박3일이 걸립니다. 그래서 중간에 숙소가 필요합니다. 집이 대구나 가까운 분들은 누구한테 태우러 오라고 부탁하면 되는데, 멀리서 오신 분들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2구간 끝나는 지점인 창평지 옆에 집 한 채를 샀는데 곧 리모델링을 하고 증축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3구간이 끝나는 지점인 동명성당에는 교육관을 리모델링하여 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1구간이 끝나는 신나무골 성지에는 그 옆에 있는 예수성심시녀회의 엘리사벳집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년부터는 중간 중간 하루를 묵을 수 있는 숙소도 갖추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건강과 함께 신앙 쇄신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티성지 입구에 도착하면 억새 숲이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억새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억새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억새 숲과 억새 마을은 경상북도와 칠곡군에서 지원하여 예전에 있었던 한티 교우촌을 복원한 것입니다.

‘한티 가는 길’은 한티성지에 도착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7기의 순교자들의 묘를 모두 참배해야 순례가 끝나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티아고의 깜뽀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는 것으로 순례가 끝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티 가는 길’도 한티에 묻혀있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참배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티성지에는 37구의 순교자 무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7구의 무덤이 한티재 올라가는 지방도로 위에 있는 산비탈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티성지 개발을 하면서 칠곡군의 도움으로 그 도로 밑으로 ‘옹기굴’ 같이 생긴 터널을 만들어 도로를 건너지 않고 7구의 순교자 무덤에 갈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37구의 순교자 무덤 중에서 이름이 밝혀진 분은 현재 네 분밖에 없습니다. 즉, 서상돈 아오스딩 회장님이 청년 시절 1867년 1월에 상주에서 순교하신 삼촌을 이곳 한티에 모시고 와서 묻었던 하느님의 종 서태순 베드로, 그리고 한티 공소회장 조영학 토마의 부친 조가롤로와 모친 최바르바라, 그리고 조 가롤로의 누이 조아기만 이름을 알 뿐, 나머지는 이름조차 모르는 무명 순교자 묘입니다.

한티의 순교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심문도, 재판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분들입니다. 집에서, 혹은 밭이나 가마터에서 일하다가 붙잡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해시대의 교우촌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만, 불편하기 짝이 없고, 구차하기 그지없는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교우촌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은, 언젠가 때가 오면 순교를 하겠다는 각오로 살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박해의 피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 얼마 안 되어서 교우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다시 모여 살게 된 것이 교우촌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 말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7-39)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 없이 사는 듯이 물질 만능과 과소비와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도 순교자의 믿음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순교 성인 복자들과 한티의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