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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친교의 사람이 됩시다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강론)
   2022/09/30  15:25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2022. 09. 27. 교육원 대강당

 

코로나19 때문에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를 3년 만에 드리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다들 살아남았네요. 저도 지난 3월 대유행 때 확진이 되었는데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코로나19는 한 때 우리들의 일상과 신앙생활까지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어려움을 안겨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죽음까지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실외 마스크 쓰기도 해제되었습니다만,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전 상황으로 완전 회복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회복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난 24일(토)에는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한티성지까지 걸어가는 교구 도보성지순례가 3년 만에 개최되었습니다. 한 1200여 명이 참석하였는데, 모두들 좋아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듬뿍 받아가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약해진 사람들의 신앙심을 성지순례와 순교자 신심으로 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본당에서도 가을이 성지순례하기 참 좋은 계절이니까 잘 활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2년 전에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살자고 교구 10년 장기 사목계획을 세웠습니다.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핵심가치를 10년 동안 살자는 것입니다.

10년 장기사목계획대로 다 살면 2031년에는 ‘교구설립 120주년’이 되며, 무엇보다 ‘조선교구 200주년’이 됩니다. 한국교회로서는 하나의 ‘희년’이 될 것입니다.

10년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우리 교구는 지난 2년간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슬로건으로 살았습니다. 작년에 교구 성서사도직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성경통독 40주간 대면 강의도 있었습니다만, ‘주교님들과 함께 하는 온라인 성경통독 40주간’을 실시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저도 참여하였는데 따라가느라 약간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다 끝나고 나니 노트 한 권이 생겼고,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통독을 마쳤다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선교수녀연합회에서도 ‘말씀의 해’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 예레미야 수녀님의 말씀 강의를 오전부터 들으신 것으로 압니다.

올 대림절부터 2024년까지는 우리 교구가 ‘친교의 해’를 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친교’는 교회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친교이고 친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입니다.

친교의 원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의 실천적 고백이 친교라 할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고 있듯이 우리도 그런 친교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주제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입니다. ‘시노드 정신’으로 번역한 ‘시노달리따스’란 말을 한 때는 ‘공동 합의성’이란 말로 번역한 일이 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 주교회의에서 ‘시노드 정신’이란 말을 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시노드’나 ‘시노달리따스’나 모두 ‘함께 가는 여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교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다른 피조물과 함께 하면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친교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직자와 수도자가 친교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데 교회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구 안에도 본당 사목을 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신부님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번 시노드의 정신이 ‘만남, 경청, 식별’인데 그게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본당은 사목회 임원이 수시로 바뀌고, 또 어떤 본당은 사무직원이 수시로 바뀝니다. 그리고 어떤 신부님은 가는 데마다 수녀님들과의 트러블이 생깁니다.

사실 성격상 친교가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격을 고쳐야 합니다.

본당사목을 하든, 특수사목을 하든 사목이란 것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가르치며 사람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 자신이 친교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구 사제나 선교 수녀가 맨날 혼자 지내려고만 하거나, 사람들 앞에 군림하려고 하면 친교를 절대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신자들을 만나고,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친교의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비복음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2사도를 뽑아서 가르치셨는데 처음에 뽑았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배운 사람도 있었지만 배운 것이 변변찮은 사람들도 많았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열혈당원도 있었고 오늘 복음(루카 9,51-56)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의 어느 마을을 지나가려 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묻습니다. 그런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친교의 사람으로, 복음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사람과도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는 심한 비판을 하기도 하셨지만, 그들이 초대하면 그들 집에 가서 식사도 하셨습니다. 자신을 반대하고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의 집에 가서 식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부르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친절히 대하시고 손을 얹어 고쳐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친교의 모델이십니다.

 

성직자, 수도자는 하느님의 사람이며 교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먼저 친교의 삶을 살아야 친교의 교회를 이룰 수 있고, 친교의 교회가 되어야 교회가 이 세상의 구원의 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