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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하게 봉사하라. (친교의 해 지역 방문 미사 강론)
   2023/05/09  17:24

친교의 해 지역 방문 미사

 

2023. 05. 04. 2대리구 1지역(동촌성당)

 

우리 교구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10년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교의 해를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교가 대리구의 각 지역을 돌며 신부님들과 간담회를 하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와 성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오늘은 2대리구 1지역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친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고 공동체이기 때문에 친교를 이루지 않는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는 사람들이 교회를 뾰쪽탑이 있는 성당이나 교황, 주교, 사제, 부제라는 교계제도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의 아픔이나 요구와는 좀 먼 길을 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1962년에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세상에 문을 열자’고 하시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의회 중에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돌아가셨고, 뒤이어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공의회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에 폐막하면서 교황청에 ‘시노드 사무국’이 개설되었습니다. 그것은 공의회에서 결의한 사항들을 실천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공의회 내용과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드 사무국은 몇 년에 한 번씩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인 것입니다.

이번 시노드의 주제가 ‘시노드적인 교회를 위하여-친교, 참여, 사명’입니다. 우리 교구가 친교의 해를 살고 있는데, 지금 진행되는 시노드의 주제와 잘 맞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일찍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께서는 ‘교회와 시노드는 동일어이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시노드적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사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모이는 것이니까 함께 길을 가는 시노드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만남과 경청과 식별을 통하여 친교와 참여와 사명을 잘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공동체 이전에 하느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정신을 제대로 살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친교의 모범을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사람의 청도 거절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꺼려하는 나환자에게도 다가가시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며 원을 들어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기 전에 열두 제자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스승께서 제자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하고 말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 이것이 친교입니다.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하셨는데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요한 13,16-20)은 여기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6-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일, 즉 서로 섬기고 돌보아주는 일체의 행위들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로 전에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으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서로를 섬기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필리피서 2,3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게 형제자매들을 섬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들 겸손하게 봉사한다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말썽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제1독서(사도행전 13,13-25)는 바오로 사도가 제1차 선교여행 중에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행한 설교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으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13,25)

세례자 요한이 위대한 것은 주님 앞에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구 문화홍보국장 최성준 신부님이 지난 4월 빛 잡지에 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의 고사성어인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에 대하여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글에서 결론적으로 최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자주 되새깁니다. 신자들이 사제를 보고 존경을 표하며 인사를 하고, 영적 아버지로 여기며 따르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유혹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스며듭니다. 내 능력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고, 내 힘으로 사제가 되었으며, 내가 강론을 잘하고 사목을 잘해서 신자들이 나를 따르고 존경을 표시한다고 여깁니다. 사제인 나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나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기며 기분 나빠하기도 합니다. 사실 내가 받은 모든 것, 나의 생명마저도 하느님에게서 그저 받은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도 호가호위하려는 유혹이 생길 때 성모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되새기며 살면 좋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