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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시대의 위대한 교황님들 (교황 요한 23세 및 요한 바오로 2세 시성 감사미사)
   2014/05/07  12:29

교황 요한 23세 및 요한 바오로 2세 시성 감사미사


2014. 05. 05. 성모당


 오늘 우리는 성모성월의 첫 월요일에 레지오 마리애 교구 평의회 주최로 ‘성모의 밤’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지난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요한 23세 교황님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인이 되신 것을 감사드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5월을 성모님께 바치고 성모성월로 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지상에 낳으신 분이시고 당신의 지극한 믿음과 겸손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성자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셨고, 평생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셨으며, 하늘나라에 불려 올라가신 후에는 우리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가 성모성월을 지내고 성모의 밤 행사를 하는 이유는 인간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간구하시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이며, 우리도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믿음과 겸손과 사랑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을 닮는 데 있어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잘 살지 못해서 그런지 오늘날 이 세상의 상황들이 참으로 심각합니다. 

 지난 달 16일에 전라도 진도 앞바다에서 있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지금 온 국민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탄식, 허탈과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내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 성모당에 오셔서 이번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였고 또 각 성당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기도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5월 11일)을 우리 교구는 ‘추모의 날’로 정하여 다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 각 성당에서 미사 중에 기도하시겠지만 저녁에는 이 성모당에서 특별히 ‘추모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분의 교황님이 동시에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프라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261대 교황 요한 23세와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를 성인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날 시성식 강론을 통해 두 교황님께서 20세기 가톨릭교회를 이끌었던 두 버팀목이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1962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함으로써 교회 쇄신을 시작하셨다고 할 수 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오랜 재임 기간 동안 교회를 현대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선출 직후 사람들이 교황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관행부터 금지시켰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고 무릎을 꿇자 당신도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누구도 교황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황직에는 그 호칭에서부터 뒤따라오는 수많은 예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교황을 이른바 ‘황제’로 만드는 격식을 거침없이 폐지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이분들은 권위와 순명 대신에 대화와 쇄신을 택하였고, 세상 변화에 대응하고, 쇄신으로 나아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교회의 문을 활짝 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두 분의 교황을 만나지 않았으면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두 분 교황님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요한 23세께서는 1963년에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발표하셨고 또 그 유명한 쿠바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90년대 초 동구라파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교황님의 고향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바람은 동독, 체코, 유고, 소련, 루마니아 등지로 순식간에 번져갔던 것입니다. 훗날 민주화가 된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코르바초프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동구라파의 민주화는 교황님 덕분이라고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황님은 ‘아닙니다. 다 성모님의 덕분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두 교황님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은 1948년 한국 정부가 유엔의 승인을 받을 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당시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였던 그분은 한국 대표단이 외국 대표단을 만나 교섭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1962년에 한국천주교회에 정식 교계제도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는 설정 당시부터 대목구였던 것이 그로인해 대교구로 승격하였던 것입니다.

 역대 교황님 중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 방한하셨던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특히 첫 방한인 1984년 5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바티칸 외부에서 실시된 최초의 시성식을 집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이윤일 요한을 비롯한 103위 성인을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교황님께서는 김포 공항에 도착하시자마자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셨고,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30년 전 바로 오늘, 5월 5일 어린이날에 대구를 방문하셨습니다. 먼저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있었던 청소년대회 미사를 집전하시고 23명의 부제를 사제로 서품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교좌계산성당에 들려 어린이들을 축복하셨고 이어 성모당에 오셔서 기도하시고 교구청에서 점심을 드신 후 오후에 서울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교황님의 방한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좋은 이미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선교도 아주 잘 되었던 것입니다. 

 올 8월에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십니다. 교황님께서 5월에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십니다. 그 주된 목적은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시어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야할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한국천주교회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조선왕조 시대의 순교자들을 복자로 시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조선왕조 순교자 124위 시복식’ 미사를 집전하시고, 17일에는 대전교구 해미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 미사를 집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남북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시고 떠나실 것입니다. 

 30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방한으로 국민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많은 홍보를 하게 되었고 또 천주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90년대까지는 선교가 아주 잘 되었고 많은 성장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 많은 냉담신자들이 생기고 영세자는 감소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신앙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이 우리 한국 교회의 복음화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이번에 성인이 되신 두 분의 교황님과,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복음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으소서.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 불쌍한 영혼들과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