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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프고 두렵지만 희망을 봅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미사 강론)
   2014/05/13  11:21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미사


2014. 05. 11. 성모당


 찬미예수님.

 우리는 오늘 저녁 이 성모당에 모여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64년 전 6.25사변이 터지고 북한군이 쳐들어와 대구와 부산만 남았을 때 대구의 많은 교우들과 시민들이 이 성모당에 모여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듯이,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난 후, 그리고 5월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매일 많은 사람들이 성모당을 찾아와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번 사고로 희생된 그 수많은 영혼들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의 품 안에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계시는 유가족들에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깊은 위로와 참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26일째입니다. 아직 실종자들이 바다에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자기 자식이나 가족을 찾지 못한 가족들의 그 아픔과 슬픔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 이분들에게 힘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분들을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지난 몇 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와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가 식상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늘 또 여러분들은 제 강론을 통해서 몇 마디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하고 참 망설여집니다.

 우리나라에 유사 이래 이렇게 큰 사고가 있었나할 정도로 큰 인재 사고이기 때문에 이번 일이 온 국민에게 던져주는 충격과 상실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에도 이런 크고 작은 사고들을 겪었고 그때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비판과 대책들을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또 다시 비슷한 양상의 사고가 터졌습니다. 또 그때마다 비판과 대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는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황금만능주의 때문이다, 등등 많습니다. 어떤 분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들이 다 맞는 말들이고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제는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번 사고의 이런 원인이나 대책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는, 그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미안하다. 부끄럽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은 끝까지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승무원의 엉터리 같은 안내 방송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순진한 우리 학생들이 너무나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배 안에 남겨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버려두고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잘못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세상 곳곳이 고장 난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통령 한 사람의 사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각이 다 물러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저는 조금 전 미사 전에 노란 리본에 ‘우리 모두 회개하여 바른 세상 만들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적어서 매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재물을 우선시 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우리 생활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을 입증하는 최악의 사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겁이 납니다. 불신과 의심이 가득 찬 세상에 우리가 살고 우리 후손이 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프고 두렵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어두운 현실만 탓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냥 절망하며 슬퍼만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이 세상에 믿음을 심고 희망을 심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엔 아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끝까지 승객들과 함께 했던 여승무원,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 친구들을 위해 침몰하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간 학생, ‘저희 유가족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기 바란다.’고 하면서 성금은 모두 장학금으로 쓰겠다고 밝힌 유가족들, 그리고 가능한 드러나지 않게 모습을 낮추며 굳은 일에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자신의 아픔처럼 아파하며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 이분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고 ‘성소주일’입니다. 전에는 ‘착한 목자주일’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양들을 버려두고 도망치는 목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목자가 아니라 도둑이며 강도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 목숨을 내어놓으신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절망할 수 없고 희망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4월 26일 경기도 안산의 선부동성가정성당에서 안산 단원고 2학년 박성호 군의 장례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박군의 십년지기 친구인 신기윤(사도 요한)군의 편지가 낭독되었습니다. 그 편지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친구는 같이 사제성소의 꿈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안녕, 성호야.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 기윤이야.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복사단, 예비신학생, 전례부, 성가대, 댄스부, 레지오 등을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며 언젠가부터 꼭 함께 사제가 되자며 다짐했었지. 그러나 이제 더는 그 꿈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됐어. 나는 아직 이 현실 속에서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뜻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 느꼈어. 네가 이곳에서 하지 못한 일들, 이루지 못한 꿈을 내가 대신해서라도 꼭 해주어야겠다는 거야. 내가 너의 몫까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멋진 사제가 될게. 성호야, 나도 이곳에서의 소풍이 끝나면 너와 함께 천국에서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성호야, 내 쌍둥이 형제 같은, 내 목숨 같은 친구 성호야. 편히 쉬고 있어. 너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갈게. 진심으로 사랑해, 성호야. 사랑한다. 박성호 임마누엘. 

너를 사랑하는 친구, 네게 사랑받는 친구, 기윤이가.” 

 

 신기윤(사도 요한) 학생이 이번 사고로 먼저 하느님께 간 친구 박성호 임마누엘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서 훌륭한 사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9-10)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고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