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양 냄새 나는 목자 (대구대교구 1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14/06/20  14:29

사제피정 파견미사


2014 06 13 한티


 “그때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열왕기 상 19, 11-12)

 오늘 제1독서에 나온 말씀입니다. 몇 년 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 속에 대사 한 마디가 없었지만 이 성경말씀만 자막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님께서는 깊은 고독과 조용한 침묵 가운데에서 다가오시고 말을 걸어오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한티는 피정하기에 아주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빨리 한티에 가서 며칠 피정이라도 하고 왔으면’ 하고 한티를 그리워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한티에 살고 계시는 김종헌 신부님이 부럽기도 하고요.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연례피정을 의무적으로 합니다만, 사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의 성찰과 함께 적어도 일 년에 몇 차례의 깊은 침묵 가운데서의 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작년에 사제들에게 하신 어느 강론에서 ‘사제의 정체성 위기는 사제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에 공감이 가는 것은, 사제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잘못 삶으로써 얼마나 많은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는 말을 신문지상 등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이 말은 작년 3월에 교황님께서 성유축성미사 강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교황님께서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특별히 당부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양 냄새 나는 목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목자를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생각에 ‘양 냄새 나는 목자’는 우선, ‘신자들과 함께 하는 사제’를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목자가 양과 함께 살아야 양 냄새가 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양과 함께 어울리지도 않고, 그래서 양 냄새가 나지 않는 목자는 좋은 목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주교 되기 전까지 한 10여 년 동안 ME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ME는 다 아시겠지만 ‘부부일치운동’을 말합니다. 주로 이 ‘한티피정의 집’에서 ME주말피정을 하는데 금요일 저녁 첫 시간에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먼저 임원 봉사 부부가 인사말을 하고 배우자를 사람들한테 소개시켜 주는데, 사제인 제 차례가 왔을 때 저는 수강 부부들에게 인사말을 하고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드릴 배우자는 제 옆에 없습니다. 제 배우자는 바로 여러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자기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혼인식 때 서약한대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신의를 지키며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부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부부는 얼굴까지 닮는다고 합니다.

 사제의 배우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맡기신 양들이며 신자들입니다. 이분들을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라 생각하고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신의를 지키는지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부는 자기 배우자만 바라보고 자기 배우자만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배우자는 제쳐두고 다른 여자, 혹은 다른 남자만 쳐다보거나 쫓아다닌다고 한다면 그 부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고 하셨습니다. 

 정신적인 간음, 더 나아가 영성적인 간음도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제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갖지 않고 엉뚱한 데에 마음 쓰고 엉뚱한 데에 시간을 다 보내고 한다면 예수님과의 사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양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 할 목자가 혼자 떨어져 자기 편한 대로 산다면 그 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자가 양 냄새가 나야지 (하느님의 말씀을 파는) 장사꾼의 냄새가 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오 5, 29-30)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지켰다가는 우리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가혹한 말씀처럼 들립니다만, 이 말씀의 본뜻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기념일인데, 성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안토니오 사제에게 찾아와 고백하기를, 자기가 화가 나서 어머니를 발로 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 사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찬 그 발은 잘라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집으로 가서 자신의 발을 잘라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오 사제는 그 청년을 측은히 여겨 그 집으로 달려가 잘려진 발을 다시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니 마침 안토니오 성인의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제들인 만큼 그분을 따르는 데 있어서 안토니오 성인처럼 좀 더 철저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지난 주 가톨릭신문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 쇄신의 제1순위는 사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개혁되어야 할 과제로서는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가 가장 많이 나왔고, 그 다음으로 ‘교회 안의 세속주의’, 그리고 ‘사목이 아니라 관리가 강조되는 교회 운영’이 많이 지적되었습니다. 

 이런 지적들은 늘 들어왔던 것들입니다만 좀처럼 잘 개선되지 않고 있는 엄연한 사실임을 또한 숨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쇄신은 그냥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먼저 자기 부정이라는 불편함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분골쇄신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출되신 지가 1년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변화와 쇄신의 아이콘이 되시어 지금 세계 교회 안팎으로 커다란 쇄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로 21세기에 새롭게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성령의 바람을 온 교회가, 특히 한국 교회가 온 몸으로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마치 초대교회의 모습처럼 새로운 복음화의 물결이 넘쳐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작년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발표된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의 반향 또한 교황님의 존재만큼이나 뜨겁고 대단한 것 같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한 마디로 우리 모두가 복음의 본연의 뜻, 복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쇄신을 이루고 잃어버린 복음의 기쁨을 되찾아 이 세상을 복음화하자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바람, 이 새로운 물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진솔한 초대에 우리 모두도 함께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256 들꽃마을의 여정을 축복하며! (들꽃마을 25주년 기념 감사미사 강론) 18/09/18 10678
255 세상 속의 교회, 죄인들의 공동체 (주교 영성 모임 미사 강론) 18/09/13 9064
254 하느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삶 (관덕정 순교자 현양후원회원의 날 미사 강론) 18/09/04 8821
253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삶 (김종선 즈카르야 신부님 첫 미사 강론) 18/08/14 9819
252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기적 (연중 제17주일 미사 강론) 18/08/03 10251
251 미래를 만드는 장인이 되십시오. (잘츠부르크 청년단 환영 및 KYD 참가자 발대식 미.. 18/07/23 10021
250 나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18/07/05 10443
249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심포지엄 기조강연) 18/06/25 8548
248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단호하고 철저하게! (2018년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18/06/18 10251
247 사제직의 거룩함과 아름다움 안에서 (2018년 사제 성화의 날 미사 강론) 18/06/11 10740
246 성령 안에서 일치의 신비를! (2018 대구성령축제 미사 강론) 18/05/31 10219
245 새롭게 시작하시는 주님의 손길 안에서 (대구가르멜여자수도원 및 성당 재건축 봉헌미사 강.. 18/05/24 8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