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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넘치는 사랑의 '잉애'를 떠나보내며 (故 옥잉애 여사 장례미사 강론)
   2016/06/28  17:12

옥잉애 여사 장례미사


2016. 06. 27. 복자성당

 

옥잉애 여사께서 그저께 새벽에 하느님께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여사께서는 하느님께 가셨지만 오늘 우리는 그분의 육신을 앞에 두고 그분을 기억하며 그분께서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한 두세 달 전인 것 같습니다. 옥잉애씨와 양수산나씨, 그리고 엠마씨, 이 세 분을 모시고 식사하자고 제가 초대를 하였는데 잉애씨가 몸이 안 좋아서 참석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 분만 모시고 식사를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날 후 잉애씨 집으로 한 번 찾아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저께 새벽에 갑자기 잉애씨가 하느님 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을 아침식사 때 듣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연세도 많고 최근에 몸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옥잉애씨에 대한 저의 미안함을 이성우 아길로 신부님께서 많이 매워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40여 년 전부터 옥잉애씨의 고해사제로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뵙고 성사를 주시고 말벗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에도 신부님께서는 잉애씨를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고 마지막 성사를 배령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아길로 신부님으로 인하여 옥잉애씨는 하느님 나라에 가는 길을 더욱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옥잉애 여사께서는 1963년 3월에 서정길 대주교님의 초청으로 대구에 오셔서 평생을 아동복지를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대구에 오셔서 처음 2년간은 ‘대구 S.O.S 어린이 마을’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사께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 옆자리에 서너 살 된 아이 하나가 타고 있어서 기사님한테 물어봤더니 부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택시에 태워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S.O.S 어린이 마을은 고아들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있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갈 데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시작하신 것이 탁아소 개념의 보육원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명동의 ‘소화어린이 집’인 것입니다. 
요즘은 어린이 집에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해주지만 옛날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옥잉애씨의 고향 친지들과 독일의 국제 가톨릭 원조기구의 도움으로 집을 짓고 운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잉애씨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잉애씨는 어린이 집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어느 아이가 가장 가난한 집의 아이인가를 선발 기준으로 해서 뽑았다고 합니다. 하여튼 잉애씨는 대구의 아동복지사업의 선구자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화본당이 1972년에 설립이 되었는데 성당 건물이 없어서 몇 년 동안 소화어린이집 2층을 빌려서 사용하였고, 또 1977년에 소화성당을 지을 때도 가난한 신자들의 모금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옥잉애 여사께서 독일에 편지를 보내어 보내온 성금으로 성당을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일들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잉애씨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늘 조용하고 겸손한 삶을 사셨습니다. 
여사님의 성함이 ‘옥잉애’입니다. 그런데 성은 옥씨인 것 같은데, ‘잉애’는 뭐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년 전에 ‘옥잉애 여사 한국 오심 50주년 및 팔순 감사미사’를 준비하면서 알아보니까 ‘잉애’는 독일 이름 ‘잉게’를 비슷하게 우리나라 이름으로 만든 이름이었고 넘칠 잉(剩)자와 사랑 애(愛)자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잉애’는 ‘넘치는 사랑’, 혹은 ‘사랑이 넘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발음보다는 뜻이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여사께서는 ‘옥잉애’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구슬처럼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53년 전 당신 나라 독일을 떠나서 그 당시 보릿고개가 있었던, 참으로 가난했던 우리나라에 오셔서 젊음을 다 바치시고 떠나시는 옥잉애 여사의 장례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잃음으로써 얻는다는 것, 줌으로써 받는다는 것, 그리고 위대함은 권력이나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와 헌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전 생애를 통해 가르쳐 주신 진리이지만 우리가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옥잉애 여사를 마지막 떠나보내면서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옥잉애씨의 영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옥잉애씨가 남기신 모범과 정신을 우리도 살 수 있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옥잉애씨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다시 당신 품으로 불러 가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세상을 떠난 옥잉애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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