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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제3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22/06/13  13:43

제3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2022. 06. 10.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수년 전에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깊은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어느 봉쇄 관상 수도원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람의 대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가 없으니 자막도 없었습니다. 단지 영화 중간에 오늘 제1독서로 읽었던 열왕기 상권 19,11-12 말씀이 자막으로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요란한 가운데 오시지 않습니다. 침묵 중에 조용한 가운데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려면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 펜대믹으로 사제연례피정을 개인적으로 자율적으로 하였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사정이 좀 나아졌기 때문에 교구 주관으로 여섯 차례 나누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피정은 3차 피정인데 성경통독피정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유익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구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하느님 말씀을 따라’ 라는 사목지침으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 대면으로 하는 성경통독 40주간과 더불어 ‘주교님들과 함께 하는 온라인 성경통독 40주간’을 실시했는데 많은 신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제목이 ‘주교님들과 함께 하는 성경통독’이라서 저도 참으로 오랜만에 성경통독을 1년에 걸쳐서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하는 여한준 신부님의 동영상 강의를 들었고, 평가 시험도 세 번 쳤었습니다.

다 끝나고 나니 성취감이 밀려왔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시간에 쫓겨 읽어내는 데 급급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고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성경통독을 마친 신자들의 노트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저의 싸인을 해주었는데, 그 노트들을 보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노트에 그날 읽은 성경말씀에서 느낀 점들과 자신의 기도를 꼼꼼히 적은 분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우리의 공동의 목표는 성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는 것은 하느님 말씀과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께 늘 귀를 기울이며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신자들로부터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신부님들, 강론 때 정치 이야기 그만 하면 안 됩니까?” 어쩌다가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강론 때마다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는 언론이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실컷 들었는데, 성당에 와서까지 그 얘기를 들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강론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정치 이야기로 때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것입니다.

사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그것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그날의 성경말씀을 이병호 주교님처럼 외워서 다시 그대로 선포해도 훌륭한 강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말씀(마태 5,27-32)은 산상설교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고 계십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한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살인은 물론 욕도 하지 마라.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마라. 네 이웃은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는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놀라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아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면 예수님 말씀이 분명 맞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에게 있느냐, 아니면 하느님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창세 3,9)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 19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엘리야 예언자를 부르십니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9,13)

엘리야는 이제벨 왕비가 죽이려고 하자 호렙 산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임금으로 세우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19,15-16)

이 말씀은 더 이상 도망 다니지 말고 내가 맡기는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이제 한티에서 내려가야 합니다. 한티가 좋다고 내려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세상 가운데 가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정 동안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내려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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