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리의 수호자 (베네딕토 16세 교황 추모미사 강론) |
2023/01/06 16:1 |
베네딕토 16세 교황 추모미사
2023. 01. 04.(수) 주교좌 계산성당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난 2022년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와 벨포흐에서 있었던 우리 교구 재유럽 사제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갔었습니다. 28일에 ‘베네딕토 16세께서 많이 아프시다. 기도해 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가 떴다는 소식을 듣고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서 위독하시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로부터 사흘 만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생전에 퇴임하신 교황’ 등이 떠오를 것입니다.
교황님이 되시기 전에 원래 이름이 요셉 알로이시오 라칭거입니다. 50년 전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에도 라칭거 추기경의 저서들이 많이 번역되어 교수 신부님들 강의 때나 참고 도서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수 신학자라고 말하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신학 자문단으로 참여를 하였던 개혁적인 신학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계기로 인해 가톨릭의 전통 신학을 지켜야 하겠다는 결의로 자신의 신학을 펼쳐나갔기 때문에 보수 신학자라는 평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 바티칸 한국대사를 역임한 한홍순 교수님의 인터뷰를 어제 방송에서 보게 되었는데 교수님은 말하기를, 세속적으로 볼 때 교황님이 보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여 년 간 교수 생활을 하다가 독일 뮌헨대교구의 교구장이 되셨는데, 사목 표어가 ‘진리의 수호자’였습니다. 이 사목표어는 나중에 신앙교리성 장관이 되고 교황님이 되어서도 그대로 가지고 갔던 것으로 아는데, 이 표어대로 가톨릭교회의 진리의 수호자로서 평생을 사셨던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978년에 교황님이 되시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1981년에 라칭거 추기경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신앙교리성 장관이 되셔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에 맞서서 진리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살아 계실 때 은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돌아가시자 라칭거 추기경이 78세의 연세에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3년 2월 11일 교황으로서 은퇴를 발표하심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살아계실 때 은퇴를 하시는 교황이 되셨습니다. 2013년 2월 28일부로 은퇴를 하시고 교황청 옆에 있는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시다가 지난 31일 오전 9시 34분에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교황님께서는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며칠 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교회와 이 세상에 고인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고인이 보여주신 선행에, 그리고 무엇보다 교황 퇴임 이후 최근 몇 년 간 보여주신 고인의 신앙과 기도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으로서는 비교적으로 짧은 8년의 재임 기간이었지만 그분이 전 생애를 통하여 교회에 끼친 선한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2007년 3월에 우리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을 받고 그해 4월 30일에 주교서품을 받았습니다. 저를 주교로 임명하신 분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십니다. 그해 11월에 ‘앗리미나’가 있어서 한국의 모든 주교들이 교황청을 방문하고 교황님을 알현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교구별로 교황님을 알현하였기 때문에 최영수 대주교님과 제가 10여 분 간 교황님을 알현하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2010년 11월에 저를 우리 교구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하신 분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고 그 다음해 6월 29일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팔리움을 제 어께에 걸어주신 분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십니다. 이렇게 몇 번 가까이에서 뵈었던 분이신데, 하늘나라에 가셔서 하느님 곁에서 편안히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서 선종하시자 교황청에서 그분의 유언서를 공개하였습니다. 이 유언서는 교황 즉위 후 1년 4개월 후에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유언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겪은 세월을 돌아볼 때, 내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나에게 삶을 주시고, 혼란스러운 여러 시기를 헤쳐 나가도록 인도해주시며 모든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주님은 내가 미끄러질 때마다 항상 나를 품어주시고, 당신의 얼굴을 비춰주신다. 돌이켜보면 어둡고 힘겨운 여정조차 모두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나를 잘 인도해주신 것이 그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나를 위해 분명한 빛처럼 사랑으로 멋진 가정을 준비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명료한 믿음은 자녀인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줬고, 어머니의 깊은 헌신과 큰 선함은 내가 충분히 다 감사할 수 없는 유산이다. 누나는 수십 년 동안 나를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도왔다. 이러한 선행과 동행이 없었다면 나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생애에 걸쳐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친구와 이웃,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아름다운 조국에도 감사드리며, 고국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들 속에서 나는 믿음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땅이 믿음의 땅으로 남길 기도하며, 친애하는 독일 국민들이 믿음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를 향해서도 특히 감사하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잘못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교회의 모든 이에게 말한다.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자연 과학과 역사적 연구는 종종 가톨릭 신앙과 상충하는 반박할 수 없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오래전부터 자연 과학의 변화를 경험했고, 반대로는 신앙에 반하는 확실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볼 수 있었고, 이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해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것 또한 믿음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내가 신학, 특히 성경과학(biblical science)이란 여정에 동참한 세월이 60년 됐다. 그리고 다른 세대가 거듭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론들이 단순한 가설로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것은 자유주의 세대, 실존주의 세대, 마르크스주의 세대가 해당한다. 나는 이러한 얽힌 가정들 속에서 믿음의 온당함이 어떻게 다시 나타나는지 봤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부족함에도 진정으로 그의 몸이다.
마지막으로 겸손되이 요청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영원한 거처로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모든 이에게 날마다 나의 진심 어린 기도가 향할 것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