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모두 성인 됩시다! (순교자성월 도보 성지순례 미사 강론) |
2023/09/27 15:13 |
순교자성월 도보 성지순례
2023. 09. 23. 신나무골
우리 교구가 순교자성월에 도보성지순례를 한 것은 오래된 것 같습니다.
1968년 10월 6일자 가톨릭신문 기사에 의하면, 1968년 9월 29일에 칠곡 학명리에서 한티성지까지 걸어가는 도보순례가 있었는데 4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젊은 신부 시절에 대학생 지도신부를 맡으셨고 김달호 교수님이 지도교수로 있으면서 젊은이 중심으로 도보성지순례를 시작하였던 것 같습니다. 1966년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이하여 실행했던 순교자현양운동의 한 행사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68년 10월 6일에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시복이 되었고 이 시기에 온 교구민이 힘을 합쳐 지은 성당이 지금의 복자성당인 것입니다.
그 후로도 한티로 가는 도보순례는 계속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다가 2016년 9월 10일에 ‘한티 가는 길 45.6Km’ 가 경상북도와 칠곡군의 도움으로 개통되었습니다.
그날 가실성당 마당에서 개통식을 하고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성지까지 걷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1구간입니다. 2구간은 신나무골에서 창평지 밑의 사기점 공소까지이며, 3구간은 사기점공소에서 동명성당까지, 4구간은 동명성당에서 가산산성 진남문까지이며, 5구간이 진남문에서 한티성지까지입니다. 작년 도보순례 때에는 제5구간을 걸었습니다.
사실 ‘한티 가는 길’이 정식으로 개통되기 전인 2013년 9월 28일에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까지 도보순례를 하고 이선이 엘리사벳 묘 앞에서 미사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2013년 도보순례의 지향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 기원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다음 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서 그분들이 시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103분의 성인과 124분의 복자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4월 1일에는 지천면 창평지 밑의 사기점 공소 순례자 숙소(Soul stay)와 동명성당 숙소, 그리고 남원공소 숙소를 새로 마련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한티가는길을 단 기간에 전 구간을 걷고자 할 때 이런 숙소를 잘 이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올해 도보순례는 한티 가는 길이 아니라 한티에서 내려오는 길을 걸었습니다. 사실 박해시대 때뿐만 아니라 박해가 끝나도 한티에 교우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신부님이 계시는 신나무골로, 그리고 가실성당이 세워지고 난 뒤에는 가실성당까지 한티에서 신자들이 내려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 길의 일부를 걸었습니다.
우리의 옛 신앙 선조들이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그 산골짜기에서 왜 그 고생을 하며 살았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최우선시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고 삽니까? 건강? 가족? 명예? 돈? 그 다음이 하느님 아닙니까?
오늘 복음(루카 9,23-26)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른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말입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결전을 앞두고 장병들에게 한 말로 유명한 말입니다. 바로 우리 옛 신앙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살았던 삶이 ‘사즉생(死卽生)’의 삶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지난 8월 15일에 주교좌계산성당의 종 축복식이 있었습니다. 종탑종 2개와 음악종 30개를 축복하였습니다. 계산성당 신자들과 장신호 주교님을 비롯한 계산본당 출신 성직자들이 헌금을 하여 봉헌한 종입니다.
그래서 120년 동안 매일 하루 세 번씩 쳤던 옛 종을 내리고 새 종을 다는 작업을 하여 지난 9월 2일에 타종식을 가졌습니다. 옛날에 어릴 때 아버님을 따라 공소에 가서 아버님이 종을 치면 따라서 같이 줄을 당겼던 적이 있습니다만, 주교좌계산성당에 새 종을 달고 종탑 2층에 올라가서 새 종을 처음으로 치는데, 참으로 감격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계산성당의 종탑이 두 개이기 때문에 옛 종도 두 개입니다. 하나는 1900년에 프랑스 디종에서 제작된 것으로 1903년에 봉헌한 아오스딩 젤마나 종이고, 또 하나는 1908년에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제작되어 1909년에 봉헌한 레오 아뽈로니아 종입니다.
아오스딩은 아시다시피 서상돈 회장님의 세례명이며 젤마나는 정규옥 바오로 회장님의 부인의 세례명입니다. 이분들은 1898년 9월에 봉헌된 계산동의 한옥성당이 1901년 2월에 화재로불타버린 후 중국 기술자들을 불러 벽돌을 구워 지금의 계산성당을 지을 때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입니다.
불타버린 그 한옥성당을 이 신나무골에 복원하여 2019년 5월 2일에 봉헌식을 가졌었습니다. 신나무골 성지는 서준홍 마티아 신부님과 운영위원회에서 많은 수고를 하여 안정화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올해 교구 친교의 해를 맞이하여 대리구 지역을 방문하고 신부님들과 총회장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합니다. 대체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 3년을 겪고 난 뒤에 쉬는 교우들이 너무 많이 생겼고 아직 다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대리구별로 도보순례를 가지도록 하였고 오늘은 교구 차원에서 도보순례를 하였습니다만, 신앙 회복을 위해 우리가 좀 더 좋은 방안을 찾고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도보 성지순례를 하고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만큼 단단해지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또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순교를 통하여 성인이 되었지만 우리는 우리 삶을 훌륭하게 살아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님께서는 ‘성인들도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성인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