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 생활 > 신앙생활 > 매일 미사
2017년 02월 15일 수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수요일]
1월2017년 02월3월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    
- -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물이 빠지고 땅바닥이 말라 있어 주님께 번제물을 바치자, 주님께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신다(제1독서). 사람들이 눈먼 이를 데리고 오자 예수님께서는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고쳐 주시고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신다(복음).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16(115),12-13.14-15.18-19ㄱㄴ(◎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
에페 1,17-18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33(32),18-19 참조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무엇인가 볼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는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이 겪는 답답함은 오히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를 치유해 줄 것을 청한 쪽은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장애를 지닌 이들이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로 고통도 크겠지만, 모든 장애가 죄로 인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받은 정신적인 상처가 더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눈먼 이의 장애를 없애 주는 기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해 주시고, 다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고 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눈먼 이가 받았던 신체적인 상처보다, 치유되고 나서 자신을 멸시하고 천대했던 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뒤에 겪게 될 심리적인 상처를 막아 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삶의 아픔들은 관계에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신적인 능력을 내게 심어 주셨기에, 내가 스스로 깨닫고, 결심하고, 노력하면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하게 하며, 낙심에 빠뜨리는 일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병처럼 끌어안고 있는 편견과 오해, 그리고 이기적 집단주의에서 생깁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의 마음이 악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적 현실을 저주가 아닌, 자비로 보듬어 안아 주시고, 땅이 있는 한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인정해 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이야말로,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비의 마음이자, 치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