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 생활 > 신앙생활 > 매일 미사
2017년 02월 02일 목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1월2017년 02월3월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    
- -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 40일째 되는 날, 곧 해마다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본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신 뒤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 의식을 치르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 개혁으로 1970년부터는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주님의 축일로 지내 오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점에서 죄가 없으신 성모님에 대한 ‘취결례’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해마다 이날 교회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한편, 젊은이들을 봉헌 생활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기도할 것을 권한다. 

초 축복과 행렬

제1양식: 행렬

1. 정해진 시간에 신자들은 행렬하여 들어갈 성당 바깥의 적당한 장소나 소성당에 모인다. 신자들은 불을 켜지 않은 초를 손에 들고 있는다.
2. 사제는 미사 때처럼 흰색 제의를 입고 봉사자들과 함께 나온다. 사제는 제의 대신에 플루비알레(카파)를 입을 수 있다. 플루비알레는 행렬이 끝나면 벗는다.
3. 신자들은 초에 불을 켜고 그동안 아래의 따름 노래를 부른다.
◎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알렐루야.
<또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4. 노래가 끝나면 사제는 교우들을 바라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고 말한다. 이어서 사제는 보통 때와 같이 교우들에게 인사하고, 아래의 말이나 비슷한 말로 오늘 예식의 뜻을 새기며 적극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사십 일 전에 우리는 주님의 성탄 축제를 기쁘게 지냈습니다. 오늘은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한 거룩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식으로 율법의 규정을 지키시고, 당신을 믿는 백성을 만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한나와 시메온 두 노인은 성전에 나와서, 성령의 비추심으로 주님을 알아보고, 기쁨에 넘쳐 증언하였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 자리에 모여 왔으니, 그리스도를 맞이하러 하느님의 집으로 나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때까지는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며 빵을 나눌 때, 우리는 그분을 만나고 알아 뵈올 것입니다.
5. 이 권고 다음에 사제는 팔을 벌리고 아래의 기도를 바치며 초를 축복한다.
+ 기도합시다.
모든 빛의 샘이며 근원이신 하느님, 오늘 모든 민족들을 비추시는 계시의 빛을 의로운 시메온에게 보여 주셨으니,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이 초에 ? 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이 초를 손에 들고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백성의 정성을 굽어보시어, 현세에서 덕을 닦아 마침내 영원한 빛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 아멘.
<또는>
+ 기도합시다.
참빛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빛을 창조하시고 온 누리를 비추시니, 신자들의 마음을 밝혀 주시고, 성전에서 저희가 바치는 이 초의 광채로, 마침내 모든 이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 아멘.

<사제는 말없이 초에 성수를 뿌린다. 그리고 행렬을 하기 전에 향로에 향을 넣는다.>
6. 그다음에 사제는 부제나 봉사자에게서 준비된 촛불을 받아 들고 행렬을 시작한다. 부제는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다음과 같이 외친다.
+ 평화의 행렬로 주님을 맞이하러 갑시다. 

<또는>
+ 평화의 행렬을 합시다.

<경우에 따라 모두 응답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7. 모두 촛불을 들고, 행렬을 하는 동안 아래의 따름 노래 “다른 민족들에게는”을 찬가(루카 2,29-32)와 함께 부르거나, 따름 노래 “시온아, 너의 신방을” 또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옵니다.
○ 주님, 당신 말씀대로 이제는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하소서. ◎
○ 제 눈으로 당신 구원을 보았나이다. ◎
○ 당신이 모든 민족들 앞에 마련하신 구원이니. ◎

<또는>
◎ 시온아, 너의 신방을 꾸미고 임금님 그리스도를 모셔라. 하늘의 문이신 마리아를 맞이하여라. 마리아가 새로운 빛, 영광의 임금님을 데려오셨네. 샛별이 뜨기 전에 동정녀가 아드님을 품에 안고 오셨네. 시메온은 아드님을 두 팔로 받아 들고 백성에게 외쳤네. 이 아기는 삶과 죽음의 주님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시다.

8. 행렬이 성당으로 들어갈 때에 미사의 입당송을 노래한다. 사제는 제대 앞에 이르러 깊은 절로 경의를 표시하고, 경우에 따라 분향한다. 그다음에 자리로 가서, 행렬 때 플루비알레를 사용했으면 그것을 벗고 제의로 갈아입는다. 대영광송을 노래한 다음에 관례대로 본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보통 때와 같이 미사를 계속한다.

제2양식: 성대한 입당

9. 행렬할 수 없는 곳에서는, 신자들은 손에 초를 들고 성당 안에 모인다. 사제는 흰색 제의를 입고 봉사자들과 몇몇 신자들과 함께 문간이나 신자들이 예식에 잘 참여할 수 있는 알맞은 자리로 나온다.

10. 사제가 초 축복을 위하여 정해 놓은 자리에 도착하면, 신자들은 초에 불을 켜고 그동안 따름 노래 “보라, 우리 주님이 ……”(3항)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11. 이어서 사제는 인사, 권고, 초 축복을 앞의 4-5항과 같이 한다. 그다음에 노래를 부르며 제대를 향해서 행렬을 한다(6-7항). 미사에 대해서는 8항의 규정을 지킨다.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대영광송>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비오니, 사람이 되신 외아드님께서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셨듯이,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저희 자신을 봉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라키 예언자는 언젠가 주님께서 홀연히 당신 성전으로 오시리라고 예언한다. 그분께서 오시는 날은 선과 악을 갚으시는 심판 날이며 세상을 정화하시는 날이다. 그분께서는 사제들을 정화하시어 당신 백성이 하느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성탄 축일 후 40일이 되는 날,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한다. 말라키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실 때, 시메온과 한나는 이스라엘의 기다림이 이제 끝나고 구원이 도래했음을 알아본다(복음).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또는 히브 2,14-1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24(23),7.8.9.10(◎ 10ㄴㄷ)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루카 2,32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네.
◎ 알렐루야.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또는 2,22-32>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없음>
주님, 세상을 구하시려고 흠 없는 어린양으로 자신을 봉헌하신 외아드님의 제사를 받아들이셨으니, 교회가 기쁨에 넘쳐 봉헌하는 이 예물도 기꺼이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주님 봉헌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하신 성자께서는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시어, 성령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광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밝혀지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를 기쁘게 맞이하며,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
루카 2,30-31 참조
제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모든 민족들 앞에 마련하신 구원을 보았나이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시메온의 기다림을 채워 주셨으니, 이 성체를 모신 저희가 주님의 은총을 풍부히 받고,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렸듯이, 저희도 기쁘게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유다인의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시는 요셉과 마리아를 생각해 봅니다. 성령의 계시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요셉의 마음은 먹먹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낳은 아기 예수님이 정말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될지 확신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첫 아기를 봉헌하는 두 사람이 만난 늙은 예언자 시메온의 고백은 자못 진중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살면서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으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시메온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암흑의 역사를 살고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죽기 전에 틀림없이 구원의 빛을 보여 주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시메온의 눈은 어둠 속에서 빛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본 것입니다. 
삶이 너무 괴로우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고 말하고, 너무 억울하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평생 무엇을 찾으며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늙은 예언자 한나도 그랬습니다. 평생을 과부로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짓밟힌 예루살렘의 영화를 되찾는 날, 과부로 살 수밖에 없었던 한 많은 삶에도 하느님을 섬기며 믿어 온 영광의 날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을 성모님께서도 당신 고통을 세상을 위한 보속으로 봉헌하시며, 하느님 구원을 미리 맛보는 증인이 되십니다. 봉헌 생활의 날인 오늘, 수도자들의 봉헌된 삶은 바로 종말론적 희망, 곧 ‘지금-여기서’ 미리 맛보는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수도자들이 그런 봉헌의 삶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