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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30일 토요일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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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깊이 공부한 뒤 정부 관리로도 일했으나,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사제가 된 그는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다.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 성경이 그것이다. 또한 성경 주해서를 비롯하여 많은 신학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선종한 예로니모 성인은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시편 1,2-3 참조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하느님, 복된 예로니모 사제에게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맛들이게 하셨으니, 저희도 하느님 말씀에서 생명의 샘을 찾고 구원의 양식을 얻어, 더욱 풍요로이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즈카르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머무르시어,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주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이르시자,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말씀에 관해 묻는 것도 두려워한다(복음).
<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5-9.14-15ㄷ
5 내가 눈을 들어 보니, 손에 측량줄을 쥔 사람이 하나 있었다. 6 내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나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하고 대답하였다.
7 그때에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앞으로 나가자, 다른 천사가 그에게 마주 나와 8 말하였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9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레 31,10.11-12ㄱㄴ.13(◎ 10ㄹ 참조)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 
○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 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
○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가 복된 예로니모를 본받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구원의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예레 15,16 참조
주 하느님, 당신 말씀을 찾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복된 예로니모를 기리며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뻐하오니, 주님을 믿는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거룩한 가르침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희망은 언제나 기대와 불안이라는 양날의 칼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은 현재를 긍정하고 살게 하지만,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희망을 기다림의 고문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의 기적과 권위 있는 가르침은, 기다렸던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지만,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였을까요? 제자들의 희망과 다른 결과를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속마음을 미리 읽으신 모양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성취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감추려고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묻는 것도 두려워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두려움으로 도망친 제자들의 절망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통해 희망이 되었습니다. 삶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상적인 나와 다른 현실의 나를 만나고, 확신 속에서 배신과 의심을 품게 되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 새로운 꿈과 용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십자가 수난의 역설은 믿음이 성장하는 자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 역설을 딛고 진리의 맛을 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희망입니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역경과 고통 속에서 지혜가 자라나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날마다 초대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깨어 기도하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