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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13일 월요일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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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작은 형제회 수사 다섯 명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하였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안고 수도회를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 선교사로 모로코에 파견되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탁월한 설교로 파도바의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었다. 그러나 1231년 열병으로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안토니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한 이듬해에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 시성되었다.
시편 132(131),9 참조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로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아합 임금은 아내 이제벨의 간계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달라는 자에게 주며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5,2-3.5-6ㄱㄴ.6ㄷ-7(◎ 2ㄴ)
◎ 주님,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 주님, 제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제 외침 소리 귀여겨들으소서. 당신께 기도하나이다. ◎
○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
○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
시편 119(118),10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
◎ 알렐루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이사 61,1-3ㄹ)와 복음(루카 10,1-9)을 봉독할 수 있다.>
주님, 거룩한 신비로 복된 안토니오를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마태 24,46-47 참조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 복수법’은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옛 법전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도 언급된(탈출 21,24; 레위 24,20; 신명 19,21 참조)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구약의 가르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연하다고, 마땅히 정의롭다고 생각하던 기존의 가치를 넘어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과거의 가치관과 편견, 세상의 소리를 초월하여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악인과 악에 대해서 그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도록 하십니다. 복수하지 말고, 오히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말씀이 우리에게 가당하기나 합니까?” 하고 반문해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한 당신 십자가의 길에서 이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세상의 소리에 파묻혀, 당한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때때로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손길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야 합니다. 홀로 매달려 계시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하여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던 그분을 조금이라도 더 닮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