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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담화] 2020년 제57차 성소 주일 교황 담화
   2020/05/02  22:5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7차 성소 주일 담화
(2020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

 

성소에 관한 표현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해 8월 4일 사제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저는 사제들에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날마다 헌신적으로 하느님 백성을 섬기며 살아가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제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그들 직무에 보내는 지지를 고통, 감사, 용기, 찬미, 이 네 가지 핵심 단어들로 표현하였습니다. 제57차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다시 한번 이 표현들을 살펴보며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이번 성소 주일 복음 구절의 배경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복음 구절은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폭풍우 치던 밤에 예수님과 베드로에게 일어난 특별한 일화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마태 14,22-33 참조).

 

군중의 경탄을 자아낸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군중을 돌려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는 이 장면은 어느 모로는 우리 삶의 여정을 연상시켜 줍니다. 실제로 우리 삶의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안전한 뭍에 닿기를 초조히 고대하며, 바다 위에서 기회든 위험이든 맞닥뜨릴 채비를 하는 동시에, 키잡이가 우리를 마침내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기를 열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배가 항로를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안전한 항구로 이끄는 등대의 불빛을 좇아가는 대신에, 환영에 현혹되어 버리거나, 난관과 의혹과 두려움이라는 맞바람이 불어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제자들의 마음에도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나자렛의 스승을 따르라고 부름받아,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주님을 따라나서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건너편 강가로 건너갈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 모험은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밤이 되어 맞바람이 불고 배는 출렁이는 파도에 요동칩니다. 부르심에 부응할 수 없고 이를 해낼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압도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이 힘겨운 여정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말해 줍니다. 한밤을 가르는 여명의 첫 빛줄기처럼, 주님께서는 파도로 심하게 출렁이는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께서는 파도치는 물 위를 걸어 당신을 만나러 오라고 베드로를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를 구해 주십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그치게 해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성소에 관한 첫 번째 표현은 감사입니다. 올바른 항로를 향하여 배를 저어가야 하는 과제는 그저 우리 노력에만 맡겨진 일도 아니고, 우리가 선택한 여정에만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자아실현과 삶의 계획들의 성취는 각자 고립된 ‘나’로서 내리는 결정들로 계산되는 결과가 아닙니다. 반대로 그 무엇보다 이는, 높은 데서 오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인 건너편 강가를 가리키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배에 오를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도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한편, 키잡이가 되시어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우리에게 방향을 일러 주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암초를 만나 좌초하지 않도록 막아 주시어, 심지어 우리가 파도치는 물 위를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모든 성소는 우리를 만나러 오신 주님께서 보내시는 사랑의 눈길에서 생겨납니다. 우리의 배가 폭풍우에 휩싸이는 바로 그 순간조차도 성소가 생겨나고 있을 것입니다. “성소는 우리 자신의 선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성소는 주님의 과분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이하여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이하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 2019.8.4.). 따라서 마음을 열어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서 우리 삶 안에 들어오시는 것을 깨달을 때라야 우리는 성소를 발견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다가오시는 광경을 보고 제자들은 처음에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안심시켜 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이 말씀이 우리의 삶과 성소 여정에 언제나 함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말씀이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두 번째 표현인 용기입니다.

 

우리가 길을 걷지 못하게, 성장하지 못하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정해 주신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게 종종 우리를 가로막는 것들은 분명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유령들입니다. 안전한 강가를 버리고 혼인 생활, 성품 사제직, 축성 생활 등의 생활 신분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부름받을 때에 우리가 보이는 첫 반응은 ‘불신의 유령’인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이것은 나의 성소일 리 없어! 그 길이 진짜 옳은 길일까? 주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일까?

 

그러한 상념들, 곧 우리 마음속에서 추진력을 잃게 만드는 정당화와 계산속이 점점 자라나, 우리가 동요하는 가운데 출발지 강가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머무르게 만듭니다. 우리가 틀렸는지 모른다고, 우리는 그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그저 쫓아버려야 할 유령을 보았던 것이라고 여깁니다.

 

혼인을 하거나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 봉사하고자 축성되는 것과 같은 삶의 근본적인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배를 흔들어대는 의문도 의구심도 어려움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러 오시어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에도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러한 주님 현존을 믿을 때에 우리는, 제가 이미 “달콤한 슬픔”(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고 말했던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권태는 성소의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내적 좌절입니다.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저는 또한 고통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이 고통이라는 단어를 고단함이라는 말로 다르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모든 성소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특히 평신도, 사제 그리고 축성 생활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성소를 통하여, 우리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복음을 위하여 봉사하는 데에 우리 삶을 바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성인처럼 우리는 열망과 열정과 함께 결점과 두려움도 지니고 있습니다.

 

혼인 생활이나 사제 직무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책임이나 다가올 어려움에 압도된다면, 우리는 이내 예수님의 눈길을 피하다가 베드로와 같이 물에 빠져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믿음은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며 모든 폭풍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피로나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물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성소를 기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열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집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역사의 격동기에, 특히 우리가 폭풍우에 휩싸여 있을 때에 주님께서 활동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역풍을 잠재우시어 악과 두려움과 체념의 세력이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구체적 성소에 따라 살아갈 때에 그러한 역풍이 우리를 지쳐 쓰러지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시민 사회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은 모든 사람, 제가 즐겨 표현하듯 ‘용감한’ 부부들, 그리고 특별히 축성 생활이나 사제직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고단함을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는 고립감, 성소의 강렬한 불꽃을 차츰 사그라들게 만드는 타성에 젖어 버릴 위험,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과 불안함의 무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용기 내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유일한 주님이심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그분은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시며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파도 한복판에서도, 우리의 삶은 찬미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찬미라는 이 말이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소에 관한 마지막 표현입니다. 찬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같은 내적 자세를 함양하라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 머무신 주님의 눈길에 감사드리고, 두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간직하시며, 용감하게 당신의 성소를 받아들이시어, 당신의 삶이 주님을 향한 영원한 찬미의 노래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특히 이 성소 주일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일상 사목 활동을 통해서도, 교회가 계속해서 성소를 증진할 수 있기를 당부합니다. 교회가 우리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신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견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할 용기를 찾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온갖 고단함을 이겨 내어, 우리의 삶이 마침내 하느님과 형제자매들과 온 세상을 향한 찬미의 노래가 되기를 빕니다. 동정 마리아시여, 저희와 함께해 주시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