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사람보다 ‘이미지’가 먼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무슨 직업인지,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을 대신해 버립니다. 그래서 정작 그 사람의 목소리는 들어보지도 않고,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으면서 마음속 재판은 이미 끝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 속의 바리사이들도 군중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스스로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립니다. 그 와중에 성전 경비병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비록 율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먼저 ‘들어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니코데모도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신앙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이 한 문장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나의 첫인상, 내 안의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말을 한 번은 끝까지 들어 주는 것, 그 작은 공정함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했던 니코데모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도 누군가를 향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하고 단정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편견이 만들어 낸 환상보다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와 삶을 먼저 들으려는 마음을 청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