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비난하시는 이유를 겉과 속이 다른, 그야말로 위선적 모습 때문이라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더러운 것이 비단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만이겠는가. 저마다의 인생을 복기할라치면, 속내를 감추고 겉으로 치장한 일은 다반사가 아니겠는가. 사람이란 결국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제 속으로 바라는 건, 정의와 사랑, 그리고 배려와 인내가 아니라 그런 것들과 끊임없는 갈등이 아니겠는가. 신앙을 지키면서 사는 일은 의인이 되기 이전에, 위선자로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걷어내는 것은 겉은 물론이고 속내 역시 아름답지 못하다는 자아 성찰로 가능하지 않을까. 굳이 아름다워지려고 덤비기 보다, 우리의 결함을 마주보고 그 결함마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불행말고 행복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