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말씀에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일진대, 마치 세상을 당신의 적처럼 묘사하시니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세상”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kosmos는 “질서”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세상 질서와 원래의 하느님 질서 사이에 어떤 이질감이 생겼다는 뜻일 터입니다. 신학적으로 봤을 때, 하느님의 질서에 죽음이 들어온 것은 우리 죄의 결과입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잡아먹음으로써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우리 죄가 모든 생태계에 끼친 비극적 결과입니다. 돈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평화가 불안하게 서 있는 것 역시 우리 죄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부활은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이며, 하느님의 원초적 질서의 회복입니다.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부조리는 세상의 질서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주며 우리를 종종 절망으로 이끌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의 질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질서 속에서 하느님의 질서를 발견하려 길을 나선 순례자입니다. 이때 사랑과 겸손, 인내와 자기 희생, 침묵과 기도, 믿음과 경청은 이 순례의 길을 안내하는 지도가 되어 주며, 때론 그 자체로 하느님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순례의 종착지가 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