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소설 『침묵』에서 한강 작가는 결혼 후 아이 낳기를 망설였던 개인적 고민을 써내려 갑니다. 역사의 여러 비극에 엉겨 붙은 인간 현실의 잔혹함을 제 살이 뜯겨 나가는 아픔으로 느끼며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에게 아이를 낳는 일은, 그러니까 아이에게 세상의 현실을 보여 주는 일은 한편으로 무책임한 일처럼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마음을 돌리게 한 건 당시 남편의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거, 다 맛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오늘 복음의 말없는 주인공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입니다. 그의 손을 오그라들게 만든 건, 어쩌면 무정하고 냉혹한 세상의 현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세상이란 험한 곳, 위태로운 곳, 그로부터 내 손을 재빨리 숨겨야 하는 곳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세상은 하느님의 뜻이 펼쳐진 곳,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모든 죄와 상처를 받아 안으신 곳, 성령께서 자유로이 움직이시며 마음과 마음을 잇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지막까지 선물로서 우리에게 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일어나라. 가운데에 서라. 그리고 너의 손을 뻗어라.” 오그라든 손을 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베인 상처 속에서도 나만의 아름다움을 꽃피워 내라는 창조주의 초대인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