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그 완성은 몇몇 율법의 규범들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이들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실천 유무에 따른 의로움이 다다르는 곳은 심판입니다. 얼마만큼 지켜 냈는지, 어긴 율법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하늘 나라와 연관이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율법을 어기고 어기도록 가르치는 자 역시, 비록 ‘작은 자’일지라도 하늘 나라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율법의 준수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는 심판의 자리가 아닙니다. 하늘 나라는 어떤 이라도 함께하는 무한한 형제애의 자리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율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내쫓던 유다 사회의 편협함을 비판하는 복음입니다. 제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서로를 갈라놓고 심판하는 것이라면 내쳐진 반쪽은 어디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세상 모든 이가 웬만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