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WYD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의 날
대구대교구 젊은이 사목 대리구 출범
2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월간 〈빛〉 2월호 : 식물학자 에밀 타케 신부 _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순교 성인 기념 미사 및 선교사제 파견식
대구대교구 신청사 층별 안내
교구청 신청사 세례자 요한 경당 축복식
2025년 정기희년 폐막미사
유다인들의 단식은 지난 삶의 아픔과 고통을 슬퍼하고, 다가올 삶의 어려움이 닥치지 않도록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행위였다. 단식은 단순히 먹지 않는 일이 아니라, 울음과 자루옷, 재와 흙, 찢어진 옷이라는 몸의 표현을 통해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삶의 상처와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고스란히 안은 채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이 단식의 본래 자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단식이 하느님을 향한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의 형식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하신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다는 행위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경건함을 증명하려는 도구가 되는 순간, 단식은 이미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뜻밖에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유다 율법에서 단식 중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이 요청은 단식의 외적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과 명예를 드러내려는 태도를 단호히 거부하신 말씀이다. 단식의 형식으로 자신을 높이는 일은 하느님을 향한 겸손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숨어 계신 분’으로 소개된다. 이는 하느님께서 숨어 계셔서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보고 계신 분이라는 고백이다.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일들이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들이 있어 말없이 감당해 내는 삶이 단식의 본래 자리가 될 수 있다. 바로 그 일상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보호자로, 위로자로 함께 계신다. 유별난 행동은 때로 하느님을 가리지만, 묵묵히 살아낸 일상은 오히려 그분의 현존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