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부활로 막 건너온 이 시점에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실 죽음만큼 확실한 인간 조건도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예외 없이 자신의 어둠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란 책에서 김영민 작가는 말합니다. “노을을 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술잔을 앞에 놓고 죽음에 압도되는 것은 좋지 않다. 천장을 바라보며 죽음의 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단련된 마음의 근육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모든 창조물을 통하여 주님을 찬미한 성 프란치스코의 그 유명한 시(詩)적 기도는, 형제인 태양에서 시작하여 누이인 죽음에서 끝을 맺습니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느님을 창조주로 두고 있습니다. 죽음은 단지 누이일 뿐입니다. 죽음은 우리 곁에서 늘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이지만, 마지막날 우리가 도달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죽음은 마지막날 부활이라는 확실한 생명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면, 다시 말해 누이인 죽음을 통하여 주님을 찬미하는 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은 누이인 죽음이 오늘 내 삶의 불필요한 껍데기들, 곧 “가짜 욕망들”을 가려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실은 내가 “평안”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보이지 않는 배려 덕분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