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고 하십니다. 왕실 관리는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의사들도 낫지 못한다 했으니, 자기 아들을 살릴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 뿐입니다. 가쁜 숨을 달래지도 못한 채 달려왔지만 “가거라”는 예수님의 무심함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쉬이 납득되지 않는 말씀들을 참 많이도 하셨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또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19,26) 하는 말씀들은, 과연 이분이 사랑의 하느님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왕실 관리를 길 위로 인도하십니다. 그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곳, 하느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이 이루어진 곳은 길 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이 모든 일이 번개처럼 나를 관통합니다. 우리는 납득 가능한 논리를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일단 걸으라 하십니다. 사실 삶이라는 신비는 처음부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리에게 과업처럼 주어졌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해서 우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납득되지 않는다 하여 멈추어 선다면,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요원해집니다. 성모님처럼 질문을 간직하고, 왕실 관리처럼 길을 계속 걸어갈 때 하느님, 세상, 삶과 죽음, 관계의 신비들은 예기치 않은 순간 자신의 속살을 드러냅니다. 굴복하여 멈추어 서지 않길, 그저 걸을 수 있길, 성령께서 바람처럼 살며시 내게 다가와 그 의미들을 조금씩 밝혀 주시길 청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