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찾아 나선 이가 예수님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그토록 찾고자 한 예수님을 보고도 정원지기로 생각한 마리아를 그래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부활 이전의 예수님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이 달라지셨는지, 아니면 마리아가 자신의 슬픔에 못이겨 예수님을 미쳐 알아보지 못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침묵한다. 그저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라뿌니!”라는 마리아의 응답이 전부다. 이름 하나와 응답 하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데 있어 전부라니! 학자들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인격적이고 내면적이며 개인적인 관계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머물러야 부활하신 주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묻는다. 부활한 주님을 인식하는 데 있어 필요한 조건을. 마리아는 울고 있었다. 상실의 슬픔인지, 그리움의 갈망인지 그 울음의 정체를 쉽게 알아듣기 힘드나, 마리아는 그토록 울고 있었다. 슬픔과 갈망이 뒤섞인 순간, 자신의 이름 하나를 누군가 불러주는 것으로 부활은 체험된다. 인격적, 내면적, 개인적 관계? 그건 어려워서 모르겠으나 울고 있는 이에게 이름 하나 불러 주는 것, 그것이 부활한 예수님의 자기소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