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김민정 시인은 “걱정하는 마음”이라 대답합니다.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삶과 죽음, 인간과 세상, 역사와 약자의 “환하고 아픈” 현실을 백색의 종이 위에 처연히 써 내려간 故 허수경 시인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니, 그 대답의 발원지를 짐작할 만도 합니다. 시는 걱정하는 마음, 폐허가 된 인간(나)의 마지막 남은 선한 마음에 기대어 내뱉는 절제된 호소, 말과 말을 버무리고 조형하는 가운데 끝내 내 살을 깎아내는 순교입니다. 시인의 마음이야말로 그래서, 창조주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좁은 문”(루카 13,24)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창조의 위업이, 위태로이 서 있는 십자나무 앞에서 방향을 잃습니다. 창조의 결말이 십자가라면,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욥 3,3)이라 외치며 자신의 ‘창조’를 저주한 욥이 오히려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창조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일관된 섭리가 있다면 바로 하느님의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창조가 하느님의 산문이라면, 십자가는 하느님의 시입니다. 시인이 걱정하는 마음을 말씨에 담고 벼르듯 최고의 시인인 하느님은 걱정하는 마음을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십자가에 고이 담아냅니다. 왜 한마디라도 더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시는 절제된 호소, 자기 순교의 미학(美學). 그렇다면 십자가라는 하느님의 시를 매일 곱씹고 음미하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걱정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그에 공명하는 게 신앙인의 소명인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