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은총의 말씀”이 있자 사람들이 그분을 “좋게 말하며” 화답합니다. 축복에 축복이 더해지는 장면입니다. ‘축복’에 해당하는 라틴어 동사 ‘benedicere’는 ‘bene(좋게)’와 ‘dicere(말하다)’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축복은 대단한 내용과 형식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를 좋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사실 우리 믿음에서 축복은 인간 존재의 기원이며 인간 존엄의 이유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느님께서 축복의 말씀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베네딕토(Benedictus. 좋게 말해진 자)’이며 우리의 소명 역시도 서로를 좋게 말하는, 그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신적인 일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이 그러나 달콤한 말들의 단순한 포장일 수 없음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가정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결국 그들은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쓴소리를 듣게 됩니다. 너를 잘 모른다는 인정이 배제된 맥락에서 섣불리 내뱉은 호의적 말들은 역설적으로 너에 대한 의심과 험담, 비난과 혐오를 소환시킵니다. 가까울수록 더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쉽게 내뱉은 축복일수록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빠릅니다. 너를 좋게 말하는 일이 정말로 네게도 좋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너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듣는 태도는 축복의 출발점이자 완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