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사전』의 저자 김소연 시인은 이해와 오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오해해 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 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일 시인의 관찰이 정확하다면, 너에게서 나의 약한 모습을 능히 감출 수 있는 ‘오해의 가면’을 쓰는 게 나의 본성이며, 오해의 가면을 넘어선 나의 진짜 얼굴을 네가 ‘이해’하는 순간 나는 발끈하며 네 판단이 틀렸음을 항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얼굴에 쓴 가면이 두껍다는 것, 또 내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너에 대한 공격과 심판이 빠르다는 것, 그것은 감추고 싶은 나의 약함이 그만큼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말씀하십니다. 내 눈에 들보가 있는 한 내가 “뚜렷이 보는” 일은 요원합니다. 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는 길은 아득합니다. 타인에 대한 습관적 판단과 심판만이 내 가면을 지키는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이해’를 믿습니다. 그분은 내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판단하지 않고 다만 안아 주십니다. 거기에서 나를 만나시고, 거기에 당신 사랑과 구원의 자리를 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이해’는 나의 약함에 대한 가장 따뜻한 위로이며, 진실된 나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초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