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시대에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와 대화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사마리아 여인과 길에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지요.(요한 4,27) 주님은 차별당하고 약자였던 여성을 존중하셨습니다. 사회가 만들어 둔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뛰어넘으신 예수님의 진면모는 오늘 복음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티로와 시돈은 이방인 지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만난 이를 “가나안 여인”이라 기술하는데 이곳은 옛 이스라엘에게는 저주받은 땅이었습니다.(창세 9,25) 이방인 지역, 저주받은 가나안 지역의 여인, 모든 조건은 경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되게 마귀 들린 딸을 살리기 위해 어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도와달라 소리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소리 지르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크라조’는 위급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외치거나 간청하는 의미로 사용합니다.(창세 18,20; 시편 34,16; 마태 27,50 참조)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애써 외면하시려 합니다만, 사실 그녀의 외침이 무르익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뎌내는 신앙을 지니기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항구한 믿음을 가지기를, 침묵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끝까지 간청하는 어미를 예수님께서는 탄복하며 받아들이십니다. 경계를 뛰어넘도록 이끌어 주시지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방해되는 경계들을 어떻게 넘어 가고 있는지 복음은 넌지시 물어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