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재의 수요일 미사 강론) |
2019/03/07 20:37 |
재의 수요일 미사
3월 6일(수) 꾸르실료교육관 성당
찬미예수님, 대주교님을 모시고 오늘 재의 수요일 미사를 이곳 교구청 꾸르실료 교육관 경당에서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 시기의 첫날입니다. 사순 시기는 오늘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만찬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이며, 이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부활 축제를 준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영광스러운 부활로 나아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거치지 않으셨더라면 그분의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부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십자가를 통해야만 합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서는 부활로 또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 세상에서의 죽음을 지나야만, 다음 생에서 곧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숨어 계신 하느님께 보여드리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교육 심리학자(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어른은 심리적으로 ‘생산성’과 ‘침체성’ 사이 갈림길에 선다고 합니다. 생산성은 자신의 에너지를 다음 세대와 인류 공동체의 미래와 성장을 위해 제공하려는 선택이고, 침체성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멈추는 선택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단식은 현재의 삶을 유지하려는 욕망(곧 침체성)을 절제하고 하늘나라를 향한 방향성을 성찰을 하는 것(곧 생산성)입니다. 곧 단식은, 현재 내가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 등 욕망에 따라 내 맘대로 살거나, 혹시라도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욕망에 이끌려, 하느님 부르심의 길을 놓치고 그 길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는지를 살피고 성찰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 앞에서 밥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때, ‘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하고 깨달으면, 하느님을 향해 새롭게 방향을 잡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도 단식을 합니다만, 사순 시기의 단식은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카이사리아의 대 바실리오 교부는 “음식을 삼가는 것만 단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참된 단식은 악습을 멀리하는 일입니다. 온갖 악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부당한 계약서를 찢어 버리십시오. 그대에게 고통을 주는 이웃을 용서하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단식은 악습을 치료하는 약입니다.”라고 하십니다.
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이제라도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덧붙여 ‘하느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기에’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주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사순 시기의 단식이죠.
이제 재를 축복하여 머리에 얹을 것입니다. 재를 얹으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말합니다. 앞의 구절은 회개와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뒤의 구절은 창세기에 따라 사람이 흙에서 창조된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웁니다. 회개를 위해서는 하느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하느님 없이는 비참한 존재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하고 인간이 흙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영어로 ‘휴먼’인 사람의 어원은 사실 창세기의 ‘후무스’ 곧 흙먼지입니다. 그런데 회개에 필요한 은총인 겸손도 영어로 ‘휴밀러티’인데 똑같이 ‘후무스’가 어원이기에, ‘겸손이란 내가 흙먼지이며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회개에서, 겸손의 역할은, 자신 자신이 흙먼지이며 숨 한번 끊어지면 흙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깨닫게 하고, 잘못된 방향이라면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 우리 모두 겸손하게 회개하고,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향하며, 새롭게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들읍시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