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 곁의 성모님 (사제연중피정 3차 파견미사 강론) |
2023/09/18 10:45 |
사제연중피정 3차 파견미사
2023년 9월 15일 한티 피정의집
찬미예수님. 사제연중피정(3차)의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제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오늘 전례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생략해도 되는 부속가가 제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십자가의 길 기도 때 이동하며 부르는 성가로 부속가 의 11번째 구절을 많이 사용합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입니다. 서양에서는 첫 두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데 <스타밧 마텔>(Stabat Mater)이고, ‘어머니께서 서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제목을 포함하는 첫 구절은 “아들 예수 높이 달린 십자 곁에 성모 서서 비통하게 우시네.”입니다.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서 오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 마련된 것은 구원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곁에 성모님께서 아드님의 수난을 보시며 고통스러워 하셨음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지내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언제나 예수님 곁에는 성모님이 늘 함께 계신다는 전례의 표현입니다.
보좌신부 때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사제의 정체성>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제는 ‘양치기개’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내 양을 잘 치라.’고 맡겨 주셨지만, 목자는 여전히 예수님이시기에 우리 사제들은 양치기개로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양떼를 몰아가는 그러한 양치기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양치기개’라서 양떼에게 가까이 가려고 해도 양들은 멀리 도망쳐 가기에, 양떼를 몰아 갈 수는 있어도 양들과 친해지기는 어렵고, 그래서 양떼를 내 곁에 양치기개 곁에 두기보다는, 예수님 쪽으로 혹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몰아야한다는 내용,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양치기개가 양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묵상하다가,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아지들은 예쁨을 받기 위해서 배를 보입니다.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배를 보이고 항복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강아지를 만져 줄 수 있게 됩니다. 사제도 신자들을 혼내고 꾸짖고 무섭게만 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다가 간다면, 신자들이 무서워하지 않게 되니, 신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피정에서 신부님들께서는 예수회 최시영(요셉) 신부님의 강의로 <밭에 숨겨진 보물>(마태 13,44)이란 주제로, 우리 마음의 밭에서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밭갈이를 하면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그 안에서 찾아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 식사 때 저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 하시면서 다른 신부님들의 피정을 돕는 모습 그리고 저녁식사 후 산책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신부님들을 뵈면서 ‘이번 피정에서 많은 체험이 있으셨구나, 좋은 휴식과 충전을 하느님 품속에서 하셨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이제 신부님들은 소임지로 가시게 되겠습니다. 강아지가 이빨을 보이고 으르렁거리면 아무도 다가설 수 없습니다. 착한목자의 양치기개 이야기의 연장입니다만, 그래서 하느님께, 동료 사제에게, 신자들에게도, 너무 방어막을 세우지 말고 조금은 편안하게 또 부드럽게 상호 관계를 형성하셔서, 신자들로부터는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고, 하느님으로부터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야기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십자가의 아드님 곁에 서서 눈물 흘리신 성모님께서는, 사제가 고통스러워하고, 사제가 힘들어 하고, 사제가 어려울 때, 당신 아드님 곁처럼 모든 신부님들의 곁에서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눈물 흘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성모님 곁으로 다가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를 간청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