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복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9ㄴ-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하신다. 예전에 읽던 공동번역 성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번역하였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면 사백구십 번인데, 그것이 일흔일곱 번으로 준 것이니 줄어도 많이 줄었다. 좋아할 게 아니다. 일흔일곱이란 숫자는 용서의 횟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완전한 용서를 지시하는 숫자다.
원문에 쓰인 그리스어 표현이 애매하여, ‘일곱 번씩 일흔 번’으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일흔일곱 번’으로 고쳐 쓰는 게 옳다. 창세기 4장에 라멕의 저주가 나온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라는 내용이다. 창세기가 말하는 일흔일곱 곱절의 앙갚음과 오늘 복음이 말하는 일흔일곱 번의 용서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앙갚음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서로 주고받은 상처는 오직 용서로서만 치유될 수 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다. 앙갚음에서 용서로 넘어가는 길을 열어 주시길 함께 기도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