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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내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8,10-22ㄱ
그 무렵 1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1(90),1-2.3-4ㄱㄴ.14-15ㄱㄴ(◎ 2ㄷ 참조)
◎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께 의지하나이다.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그분은 사냥꾼의 덫에서, 끔찍한 역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리니, 너는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리라. ◎
  복음 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죽음이 사람에게 마침표라면, 잠은 쉼표다. 이미 마침표가 찍힌 삶은 돌이킬 수 없지만, 쉼표는 다르다.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말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이 말씀처럼, 주님은 당신 손길을 통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마침표를 쉼표로 만드신다. 좌절하고 멈추고픈 현실 앞에서, 주님은 새로 시작할 희망을 주신다. 닫혀 버린 모든 가능성을 넘어, 다시금 주님은 하느님의 일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도록 허락하신다.
내가 임의로 찍어 버린 마침표들을 돌이켜 본다. 누군가를 향해 매몰차게 닫아 버린 문, ‘사는 게 그런 거지’라며 적당히 마무리짓고 타협한 내 시야, ‘이건 너무 확실해!’라며 거칠게 단정 짓고만 나의 고집들, 그 모든 끝맺음 앞에서,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이 모두는 끝낼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하느님 앞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손을 내뻗어 내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기억하자. 혈루증이 있는 여인도,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던 소녀도, 마침표를 지우고 삶의 문장을 이어 가시는 주님의 힘을 체험했다. 우리 앞에 놓인 죽음, 좌절, 멈춤이 무엇인지 다 알 길은 없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그 손을 잡아 보지 않겠는가.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의 배경은 야곱이 형의 미움과 살해의 위협에서 벗어나 살고자 어쩔 수 없이 도망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사는 사람, 곧 집에 머물기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창세 25,27 참조) 여행 자체가 커다란 시련이고 장거리 여행에 이미 지쳤을 것입니다. 형의 미움과 분노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며 풀이 죽어 있었고, 처음 겪는 여행에 지쳤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에, 또 언제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희망마저 사그라든 상태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이전까지는 아버지의 믿음을 배우고 함께 나누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을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고난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고 있는 야곱을 당신 힘으로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은 야곱에게 눈물겨운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주님께 드리는 서원의 내용을 보면 지금 당장 겪는 어려움, 곧 양식, 보호 등만을 이야기하는 점으로 보아 당장 필요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없는 것에 아쉬움이나 부족함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좁은 식견을 훨씬 뛰어넘어 풍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해 주신 미래에 대한 약속은 그가 더 높은 곳, 더 넓은 곳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서 삶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0)이십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