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54(53),6.8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본기도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화답송
다니 3,52ㄱ.52ㄷ.53.54.55.56(◎ 52ㄴ)
◎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하늘 나라 신비는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감추어져 있을지 모릅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면 하늘 나라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듣는데 우리는 매우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저마다 자라 온 환경이 다르고 익혀 온 생각이 달라서 곧이곧대로 보고 듣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는 보고 듣는 것의 ‘대상’이 아니라 보고 듣고자 하는 이의 ‘주체성‘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하늘 나라는 지금, 여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미 와 있습니다. 보고 듣고자 갈망하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겠으나 보고 듣는 것에 자유로우면 하늘 나라는 우리 삶 곳곳에 뿌리내리고 살아 움직입니다. 하늘 나라는 이미 이곳에 있습니다.
예물 기도
하느님, 구약의 제사들을 하나의 제사로 완성하셨으니 하느님의 종들이 정성껏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처럼 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존엄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사가 인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신다.
<또는>
묵시 3,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제자들이 예수님께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자,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마태 13,1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만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만 특권을 주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13,15)라고 하신 말씀은 사람들을 내치시는 느낌마저 받게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뜻을 풀이해 주시는 내용을(13,1-9 참조) 보면 씨가 뿌려지는 여러 형태의 땅은 여러 부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듣는 이의 마음 밭 상태에 따라 결실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싹이 나든 나지 않든, 열매를 맺든 맺지 않든 간에 씨는 모든 곳에 뿌려집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라면 열매를 기대하기에 적절한 곳에만 뿌리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이 비유의 씨 뿌리는 이는 모든 곳에 씨를 뿌립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똑같이 하느님 말씀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허락”에는 하느님 편에서의 허락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인간 편의 응답도 포함되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일방적이시지 않고 관계 속에서 반응하시고 행동하시는 관계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 곧 주님께 온전히 열려 있는 이들은 주님께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도 더 주시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받아들인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