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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68(67),6-7.36 참조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2,15-24.30-34
그 무렵 15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16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17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18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19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20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21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22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23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31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6(105),19-20.21-22.23(◎ 1ㄴ)
◎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
  복음 환호송
야고 1,18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아버지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31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고작 2m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겨자씨가 3m를 훌쩍 넘는 나무가 된다. 당황스러운 성장이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 작은 겨자씨와 저 큰 나무는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다. 또 아직은 작은 씨앗을 소중히 보듬고 품는 그 환경이 없이는 큰 나무의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작은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흔히 하늘 나라를 생각하면, 찬란하게 비치는 빛과 함께 오롯하게 누리는 영광만을 생각하곤 한다. 크고 웅장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영광, 그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작은 것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웃을 향하는 작은 몸짓들, 세상의 불의에 관해 외치는 작은 목소리들, 이러한 것들이 작디작은 하느님 나라를 싹트게 하는 소중한 환경이 되어 줄 것이다.
얼마나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세상의 작은 이들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고는 있는가. 사랑하고 또 찾는 그 눈빛들을 통해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오를 하늘 나라를, 오늘도 함께 꿈꿀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물 기도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예물을 바치오니 이 거룩한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힘으로 저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3(102),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또는>

마태 5,7-8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으리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며 언제나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오니 성자께서 극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이 선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의 앞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자기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주님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수송아지 신상 앞에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며 먹고 마시는 가운데 흥청거리며 놉니다(탈출 32,4.6 참조). 하느님과 계약 관계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수송아지 상을 숭배하여 십계명의 첫째 계명을 깨면서 그분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시고 글씨를 새기신 돌판을 모세가 깨 버린 것은 이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깨짐을 뜻하며, 모세의 화는 하느님의 화를 닮았습니다(32,10 참조).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은 이리도 빨리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깨뜨렸을까요? 그들은 그분의 막강한 현존을 체험하였지만, 모세의 부재로 암시되는 하느님의 부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자신들을 이끌어 주셨는데, 그 모세가 시나이산 위로 올라가 사십 일 밤낮을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24,18 참조).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 대신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보이지도 잘 느껴지지도 않는 하느님 대신에 당장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내 옆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우상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식별하는 방법은 그에 대하여 집착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나는 어떤 우상을 가지고 있는지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