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백]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는 형제 사이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그들은 베타니아의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대하여, 마르타는 정성껏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다.
본디 7월 29일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었으나, 2021년부터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변경되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2021년 1월 26일 교령 참조).
<전례문은 주교회의 홈페이지 참조(말씀 마당, 전례문)>
  입당송
루카 10,38
예수님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네.
  본기도
하느님,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신 성자께서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형제들 안에서 성자를 섬기며 마리아와 함께 성자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10-11(◎ 2ㄱ 또는 9ㄱ)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또는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8,1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믿음이 무엇일까요?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은 단지 일반적인 의미에 ‘신뢰한다’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신뢰란, 그동안의 어떤 결과물들에 근거해 우리의 이성이 내리는 판단이라 한다면,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은 결코 이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국어로 비교하면 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데, 신앙에서 말하는 ‘믿는다’라는 표현에는 ‘-안으로’라는 전치사 ‘in’이 따라오지요. 우리말에서 ‘사랑한다’라는 말보다 ‘사랑에 빠진다’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사랑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죠. 신앙의 믿음은 그 대상 속으로 나를 내던져도 될 만큼의 신뢰를 뜻하는,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의지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이고 생명인 주님, 죽더라도 살 거라는 말씀, 그것을 믿는다는 건 그분의 능력이나 나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사랑의 토대가 먼저 깔려 있어야 하겠죠. 믿음이 약해졌다면 먼저 그분에 대한 사랑이 식었음을 돌아볼 일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함께 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이 성인들을 기리는 저희가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청하오니 그들이 드린 사랑의 섬김을 기꺼워하셨듯이 저희가 바치는 제사도 기쁘게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1,27 참조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외아드님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복된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를 본받아 온갖 덧없는 일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다가 천상에서 영원히 주님을 뵈옵고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주님께서 사랑하는 이가 병을 앓고 있다고 알립니다(요한 11,3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은 다음에야 두 자매를 방문하십니다. 이에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께 일종의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원망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솔직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해 주시지 않았다고 해서 그분을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그분에 대한 믿음 안에 머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의인의 부활을 생각하는 마르타의 답변을 보면 ‘지금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하실 일에 확고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당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시고, 그는 훌륭하게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11,27).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시려고 “돌을 치워라.” 하셨을 때, 마르타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11,39)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보면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뜻인지 잘 모른 채, 오직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의지에서 한 동의 차원의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부족한 믿음에도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의 크고 작음보다는 믿겠다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