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홍]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백] 성 가예타노 사제
입당송
시편 70(69),2.6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본기도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바위에서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0,1-13
그 무렵 1 이스라엘 자손들, 곧 온 공동체는 친 광야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백성은 카데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미르얌이 죽어 거기에 묻혔다.
2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갔다.
3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5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은 공동체 앞을 떠나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불러 모아라.
그런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이렇게 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10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과 시비한 므리바의 물이다.
주님께서는 이 물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5(94),1-2.6-7ㄱㄴㄷ.7ㄹ-9(◎ 7ㄹ과 8ㄴ)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6,18 참조
◎ 알렐루야.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3-23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아들, 그리고 그리스도라고 일컫는다. 신앙인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말이겠으나, 우리는 한번 더 질문해야 한다. 이를테면 ‘하느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말이다.
오늘 복음은 후반부에 베드로를 ‘사탄’으로까지 규정하는 매몰찬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베드로가 생각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생각과 달랐다.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까지 언급한 직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탄으로까지 비난하는 이유는 베드로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운명이 서로 닮아 있지 않아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다다르는 곳은 무릉도원이나 파라다이스가 아닐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행복도, 성공도, 보람도, 명예도 아닌 진공의 상태, 그러니까 늘 깨어 있는 질문의 대상으로 남는 분이어야 할 것이다. 오늘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으로 우리는 우리 인식의 틀을 벗어나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 낼 것이다. 하느님의 일이란 늘 그렇게 인간의 일 너머에서 ‘회개’하는 우리를 기다린다.
예물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적인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의 온 삶이 주님께 바치는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지혜 16,20 참조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또는>
요한 6,3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구약 정경의 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구약 외경까지 포함하는 고대 유다교 전통의 증언들은 ‘마싸와 므리바’ 사건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고 하느님을 ‘시험’하였다는 뜻의 히브리 말에서 ‘마싸와 므리바’라는 지명이 유래합니다(화답송 참조). 그런데 구약 성경의 백성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삶의 위기를 겪으며 불신과 의심을 품기도 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찾기도 합니다. 마싸와 므리바사건은 불신하고 의심하는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공관 복음서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이야기를 다룹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라고 고백합니다. 완성도가 높은 신앙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16,23)라는 예수님의 꾸짖음과 대조를 이룹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스승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역설적이지만 불신과 의심도 자리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싸와 므리바 사건과 신약 성경의 메시아 고백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어떤 믿음을 고백합니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일상 속 의문과 불확실성 위에 불신과 의심이라는 독버섯만 키우고 있지는 않나요?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예수님과 맺은 관계를 꽃피워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김상우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