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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오늘 복음은 생소한 이름의 기나긴 나열로 시작된다. 수십 대에 걸쳐 이어 오는 세대 속에서 어찌 좋은 일, 아름다운 일만 있었겠는가. 어려운 상황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의 부족함에서 오는 죄스런 모습 또한 있었을 터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그 모습들을 넘어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복음이 알려 주는 것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기다림은 ‘임마누엘’, 어떤 순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어지지 않던가.
그 중요한 길목에 마리아와 요셉의 결단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사실 그들의 이름은 권위로 따졌을 때 앞서 등장한 왕의 이름들과 비교하자면 작디작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요청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요청에 뒤따를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긍정의 대답을 드리는 결단을 내렸다. 덕분에 그들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이’라는 호칭과 ‘다윗의 후손’이라는 호칭을 동시에 주님께 드릴 수 있었다.
우리 삶의 역사 속에도 부족함과 어려움이 있을 터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결단의 순간 또한 분명 존재한다. 주님께는 그 결단이 참으로 귀한 것임을 잊지 말자. 하느님께 ‘네’라고 응답하는 우리 모습이 세상에 예수님을 새롭게 모시고 오는 통로가 되기를, 또 다른 마리아로서 거듭나는 복된 탄생의 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